[춘하추동] 넛지(Nudge) 정신과 노란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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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넛지(Nudge) 정신과 노란풍선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 승인 2018-03-06 09:05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나에게 경찰관과의 첫 인연은 대학 시절 장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강제로 깎이던 것이었다. 세 번의 강제 이발 중 한 번은 그래도 동네 파출소에서 걸렸기에 '가방 놓고 이발소 가서 머리 깎고 오라'는 친절(?)을 경험했다. 그래서 경찰서 갈 일 있으면 괜히 주눅이 들고 뭔가 없는 죄도 생기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10년 넘게 금산경찰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런 감정이 사라졌다. 역대 금산경찰서장들은 대부분 주민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없어진 것 같다. 전임 이병환 서장은 민원실에 '과장급' 고위 공직자가 직접 민원인을 맞아 첫 상담을 하도록 했고, 서장 스스로도 일주일에 한 번, 반나절은 직접 민원인을 맞이했다.



직전 김의옥 서장은 금산경찰서 70년 역사에 처음 부임한 여성 서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부드러우면서도 범접하기 힘든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현 서장인 유희정 서장이 한 달이 넘는 금산인삼엑스포 기간 중에 '노란풍선 제도'를 운용해서 부드럽고 안전한 교통행정을 펴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과 차가 너무 많이 몰려 복잡한 시내에서 주차 위반을 비롯한 경미한 범법행위를 한 차량에 대해 벌을 주는 방식 대신 '선생님은 주차위반을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신경 쓰세요' 하는 식의 요지를 인쇄한 노란 풍선을 차량 범퍼에 붙여 놓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참 좋았다. 강력한 단속을 펼 때보다 오히려 교통사고나 주차위반 건수가 줄어든 것이다. 덕분에 엄청난 인파와 차량이 몰려 복잡했던 금산시내의 소통이 비교적 원활했고, 그 덕에 금산인삼엑스포를 무난하게 잘 치를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넛지'라는 책을 생각했다.

9년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로 지명되면서 회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넛지'란 팔꿈치로 옆에 있는 친구 옆구리로 툭 치는 행위를 말한다. 친구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도를 지나치거나 방향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대놓고 삿대질하며 잘못을 지적하면 싸움이 되기 쉽다. 그렇지만 옆구리를 가볍게 툭 치는 행동만으로도 친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견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친구는 넛지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리처드 세일러라는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일러 교수는 넛지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하자면 강요보다 은근한 개입이 더 큰 행동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지요'라든가 '한걸음만 가까이'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잔소리 몇 마디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바로 '넛지 정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만 명 가까운 인구가 살던 내 고향 금산군 제원면에 일본인 순사가 딱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인 조수와 둘이서 동네 치안을 전담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엄청나게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이렇게 적은 인원만으로도 나름대로 치안을 유지했다고 한다. 작고하신 부친에게 들은 얘기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경찰관이 법을 어긴 강도, 도둑놈, 사기꾼에게는 당연히 엄한 기강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해묵은 표현인 '민중의 지팡이'로 대변되는 표어와 같이 선량한 주민들에게는 친구로 다가서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런 당위성과 함께 '노란 풍선'으로 대변되는 금산경찰서의 넛지 정신이 지속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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