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의 세상만사] 다시 피어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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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은의 세상만사] 다시 피어날 꽃

  • 승인 2018-04-26 09:05
  • 신문게재 2018-04-26 21면
  • 최고은 기자최고은 기자

며칠 째 비가 와서 봄 같지 않은 날씨가 이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갰지만, 어쩐지 사색에 빠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요즘 들어 자주 생각나던 시를 찾아보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실 갑작스레 이런 시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젊은 여성들에게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킨 남자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종 순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팬들의 간절하고 오랜 염원으로 기적 끝에 데뷔한 그룹이 있었다. 7개월이란 짧은 계약 기간 안에 이 그룹의 조합을 더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뭉친 팬덤은 엄청난 단합으로 음원 차트 1위, 음악 방송 1위 등 신인답지 않은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또한 반년 남짓한 시간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며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3개의 앨범 모두 김춘수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맨 뒷장엔 시 한 구절이 담겨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연습생도 있었고 데뷔를 했던 멤버도 있었지만 오로지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고 1분 1초라도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이제 그들이 함께하기 까지 일주일이란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인지 국내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는 그야말로 통곡의 장이었다. 가수도 스태프도 팬들도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앞서가는 시간을 아쉬워했으며 붙잡을 수 없는 시간에 괴로워했다. 팬들은 휴대폰 플래시 이벤트 등을 펼치며 가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표현했고, 멤버들도 콘서트를 마무리하며 김춘수 시인의 시를 한 소절씩 읊으며 끝을 노래했지만 끝이 아니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가 되었던 모 방송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으며, 그 중에 팬들에 의해 화려하게 피어나 가수로 거듭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가수와 팬,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일반 가수와는 다른 결성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남다른 끈끈함을 과시하던 한 그룹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처럼, 어느 좋은 날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를 그 날까지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자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갖게 해 준 김춘수 시인의 꽃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영원하길, 너무 아파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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