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광주를 품은 5월의 무등산

  • 전국

[여행과 산]광주를 품은 5월의 무등산

  • 승인 2018-05-11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180510_154224818
무등산의 주상절리.화산활동의 흔적이다.서석대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1187번. 무등산 원효사 가는 광주 시내버스다. 원효사는 무등산을 오르는 등산로 중의 한 곳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원효사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외지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광주 시민들은 어김없이 원효사 가는 1187번을 알려준다. 광주에서 1187번 시내버스는 특별하다. 대개 시내버스 번호는 두 자리거나 세 자리이기 때문이다. 1187m. 무등산의 해발 높이다.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광주와 무등산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이 둘은 늘 함께 한다. 그만큼 무등산은 광주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자 신적인 존재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선동열은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다. 최동원과 야구계에서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진 선동열은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 소속이었다. 투수 선동열은 공을 뿌리는 속도가 150km나 된다고 해서 '무등산 폭격기'라는 어마무시한 닉네임을 얻었다. '무등산 수박'도 빼놓을 수 없다. 무등산에서만 난다는 이 수박은 일단 크기가 압도적이다. 맛과 향도 남달라서 비싼 값에 팔린다. 5월, 광주의 상징 무등산에 올랐다.

원효사에서 정상 부근까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신작로가 나 있다. 이른바 작전도로인 셈이다. 무등산 정상엔 군사보호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갓 마흔 넘어 이 길을 오른 적이 있다. 아스팔트는 아니지만 찻길을 오르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오르는 산행이라 다른 길은 알 턱이 없었다. 겨울 끝자락이었는데 날씨 탓인지 등산객은 나 외의 사람은 한명도 안 보였다. 이번엔 우연히 무등산을 잘 아는 광주 사는 아주머니와 함께 가 보지 않은 길로 가는 행운을 얻었다.

외진 비탈길로 가는 등산로는 능선을 타는 멋진 코스였다. 중봉 능선은 환상적인 짜릿함을 주었다. 진달래가 피고 진 자리에 진분홍 철쭉이 피었다. 처음 들어본 고추나무 꽃도 보았고 뽀얀 솜털이 날리는 탐스런 갯버들강아지도 만났다. 내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미세먼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 가슴을 한껏 부풀렸다. "아따! 되다." 나의 동행자는 숨이 차는 지 뒤따라오면서 헉헉거렸다. 역시 광주였다. 광주는 전라도 사투리가 센 지역이다. 대도시임에도 남도 분위기를 징하게 뿜어낸다. '되다'는 충청도의 '대간하다'와 같은, '힘들다'란 의미인 것 같다.

동행자와는 중봉에서 헤어졌다. 서석대까지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나와 속도를 맞추기 어렵단다. 아무래도 삐친 모양이다. 나중에 계룡산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자며 연락처를 달라길래 확신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여행지에서의 감흥에 취해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다시 연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까지 가는 길은 가을에 가장 어울릴 만한 풍광이다. 길 양쪽으로 억세 군락이 드넓게 펼쳐진다. 가을에 다시 한번 무등산 품에 안길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서석대가 보였다. 서석대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무등산 주상절리 앞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정상에 솟아있는 서석대와 입석대는 주상절리의 일부다. 해발 1000m 고지대에 뜬금없이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대자연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된다. 제주도 해안가에도 주상절리가 있지만 산 위에 5, 6각형의 10m가 넘는 돌기둥이 무더기로 서 있는 모습은 태초의 신전을 떠올린다. 85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한반도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강력한 지각변동과 화산 활동으로 지금의 무등산의 위용이 형성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지난 4월 무등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안타깝게도 무등산 정상엔 군사시설이 있어 서석대와 입석대는 출입금지다. 1년에 하루 개방하는데 올해는 5월 12일이었다. 아쉽지만 멀리서나마 눈을 맞춰야 한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광주는 해발 1000m가 넘는 무등산이 품고 있는 형상이어서 광주 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다. 태풍 같은 봄바람에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 해 5월에도 이렇게 바람이 불었을까. 뒤따라 올라 오던 청년들의 대화를 듣자니 광주에 소재한 대학들은 축제를 5월이 아닌 가을에 연다고 한다. 광주 시내 거리에 '보아라 5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란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걸 원효사 가는 버스 안에서 보았다. 광주 시민들에게 5월은 분노와 상처의 계절이다. 상처는 극복되지 않는다. 다만, 견딜 뿐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뉘우침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신록이 나부끼는 5월의 무등산은 잠들지 못한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KakaoTalk_20180510_154542453
무등산에는 이처럼 주상절리가 흔하다.
KakaoTalk_20180510_154418126
무등산에서 내려다 본 광주 시내.
KakaoTalk_20180510_154256355
멀리서 본 서석대. 서석대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금지 지역이다. 일년에 하루 개방한다.
KakaoTalk_20180510_153834208
중봉 능선.
KakaoTalk_20180510_154007892
KakaoTalk_20180510_153740214
KakaoTalk_20180510_153904493
KakaoTalk_20180510_153816129
KakaoTalk_20180510_15392444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지곡면에 '문화예술 새 거점' 들어선다, 내포-서산 창작예술촌 건립 속도
  2. 'KTX 세종선·CTX 연장' 충청권 합의로 새 국면
  3. 천안시, 원성커뮤니티센터 건축설계 최종보고회 개최
  4. 장기수 천안시장, 복지현장서 폭염 대비 안전점검
  5. 천안시, 민선 9기 출범 맞춰 안전·보건경영방침 개정
  1. 與 당권주자, 지역 현안 실종된 순회경선에 비판 고조
  2. 남서울대, 롯데마트 성정점서 탄소중립 조형물 전시회 성료
  3. 천안시청공무원노동조합, 이색 청렴 캠페인 전개
  4. 천안시, 'K-컬처박람회' 앞두고 선제적 방역소독 총력
  5. 천안문화재단, 하반기 삼거리·서북갤러리 전시 개최

헤드라인 뉴스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연일 체감온도 33도 이상 불볕더위에 대전에서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정동 쪽방 주민들은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과 역세권 정비를 위한 이곳 쪽방촌 공공개발 사업이 지난해 9월 2년 반 만에 기본조사가 재개돼 기대감을 모았으나 최근 완공 시점이 2032년으로 변경된 데다 여전히 토지건물주 이견에 벽을 넘지 못해서다. <중도일보 2025년 1월 14·20·21·23일 자, 7월 9·10일 자, 8월 6일 자 1면 보도 등>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올 연말까지 기본조사를 마친..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대전 서남부터미널 운영업체의 '경영 악화'로 터미널 폐업이 사실상 불가피해지면서 지자체의 조속한 폐업 결정과 교통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최근 단 하나 남아있던 금남고속마저 '이용객 감소'를 이유로 유성복합터미널로 기점 변경을 신청, 충남도가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폐업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운송업계에선 폐업을 늦추는 것보단, 조속한 이동권 확보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일 운송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금남고속은 충남도에 기점 변경을 신청했다. 금남고속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공사로 서남부터미널 진입..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이 증시를 뒤흔드는 주범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겨냥해 긴급조치권이라는 강도 높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본예탁금 상향 등을 골자로 하는 보완책에 이어 발표된 추가 대책 일환으로, 글로벌 반도체 종목 쏠림 현상에 레버리지 상품까지 겹쳐 극도로 높아진 시장 변동성을 관리한다는 차원이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긴급한 상황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함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최근 홍콩의 가변 레버리지 배율 사례를 참조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