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광주를 품은 5월의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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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산]광주를 품은 5월의 무등산

  • 승인 2018-05-11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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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주상절리.화산활동의 흔적이다.서석대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1187번. 무등산 원효사 가는 광주 시내버스다. 원효사는 무등산을 오르는 등산로 중의 한 곳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원효사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외지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광주 시민들은 어김없이 원효사 가는 1187번을 알려준다. 광주에서 1187번 시내버스는 특별하다. 대개 시내버스 번호는 두 자리거나 세 자리이기 때문이다. 1187m. 무등산의 해발 높이다.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광주와 무등산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이 둘은 늘 함께 한다. 그만큼 무등산은 광주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자 신적인 존재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선동열은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다. 최동원과 야구계에서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진 선동열은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 소속이었다. 투수 선동열은 공을 뿌리는 속도가 150km나 된다고 해서 '무등산 폭격기'라는 어마무시한 닉네임을 얻었다. '무등산 수박'도 빼놓을 수 없다. 무등산에서만 난다는 이 수박은 일단 크기가 압도적이다. 맛과 향도 남달라서 비싼 값에 팔린다. 5월, 광주의 상징 무등산에 올랐다.

원효사에서 정상 부근까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신작로가 나 있다. 이른바 작전도로인 셈이다. 무등산 정상엔 군사보호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갓 마흔 넘어 이 길을 오른 적이 있다. 아스팔트는 아니지만 찻길을 오르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오르는 산행이라 다른 길은 알 턱이 없었다. 겨울 끝자락이었는데 날씨 탓인지 등산객은 나 외의 사람은 한명도 안 보였다. 이번엔 우연히 무등산을 잘 아는 광주 사는 아주머니와 함께 가 보지 않은 길로 가는 행운을 얻었다.

외진 비탈길로 가는 등산로는 능선을 타는 멋진 코스였다. 중봉 능선은 환상적인 짜릿함을 주었다. 진달래가 피고 진 자리에 진분홍 철쭉이 피었다. 처음 들어본 고추나무 꽃도 보았고 뽀얀 솜털이 날리는 탐스런 갯버들강아지도 만났다. 내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미세먼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 가슴을 한껏 부풀렸다. "아따! 되다." 나의 동행자는 숨이 차는 지 뒤따라오면서 헉헉거렸다. 역시 광주였다. 광주는 전라도 사투리가 센 지역이다. 대도시임에도 남도 분위기를 징하게 뿜어낸다. '되다'는 충청도의 '대간하다'와 같은, '힘들다'란 의미인 것 같다.

동행자와는 중봉에서 헤어졌다. 서석대까지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나와 속도를 맞추기 어렵단다. 아무래도 삐친 모양이다. 나중에 계룡산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자며 연락처를 달라길래 확신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여행지에서의 감흥에 취해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다시 연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까지 가는 길은 가을에 가장 어울릴 만한 풍광이다. 길 양쪽으로 억세 군락이 드넓게 펼쳐진다. 가을에 다시 한번 무등산 품에 안길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서석대가 보였다. 서석대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무등산 주상절리 앞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정상에 솟아있는 서석대와 입석대는 주상절리의 일부다. 해발 1000m 고지대에 뜬금없이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대자연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된다. 제주도 해안가에도 주상절리가 있지만 산 위에 5, 6각형의 10m가 넘는 돌기둥이 무더기로 서 있는 모습은 태초의 신전을 떠올린다. 85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한반도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강력한 지각변동과 화산 활동으로 지금의 무등산의 위용이 형성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지난 4월 무등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안타깝게도 무등산 정상엔 군사시설이 있어 서석대와 입석대는 출입금지다. 1년에 하루 개방하는데 올해는 5월 12일이었다. 아쉽지만 멀리서나마 눈을 맞춰야 한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광주는 해발 1000m가 넘는 무등산이 품고 있는 형상이어서 광주 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다. 태풍 같은 봄바람에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 해 5월에도 이렇게 바람이 불었을까. 뒤따라 올라 오던 청년들의 대화를 듣자니 광주에 소재한 대학들은 축제를 5월이 아닌 가을에 연다고 한다. 광주 시내 거리에 '보아라 5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란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걸 원효사 가는 버스 안에서 보았다. 광주 시민들에게 5월은 분노와 상처의 계절이다. 상처는 극복되지 않는다. 다만, 견딜 뿐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뉘우침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신록이 나부끼는 5월의 무등산은 잠들지 못한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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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는 이처럼 주상절리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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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서 내려다 본 광주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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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서석대. 서석대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금지 지역이다. 일년에 하루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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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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