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세상만사] 늦은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 오피니언
  • 기자수첩

[박새롬의 세상만사] 늦은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 승인 2018-07-02 14:45
  • 신문게재 2018-07-03 21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2002년 겨울. 고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당시 친구를 찾는 사이트가 유행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별로 친구를 찾아볼 수 있어 간혹 옛 학교 동창과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날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이 로그인했다고 알림이 떴다. 말을 걸 생각은 없었다. 기억은 나지만 친하지 않았던 것 같아 굳이 말 걸지 않는 사이가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그리고 더욱 피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그가 오랜만이야, 하고 말을 걸어왔다. 일곱 살 때 이후로 말해 본 적도 없는 사이지만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답게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몇 분 지나지 않아 금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먼저 그럼 잘 지내, 하고 마지막에 어울리는 말을 건넸다. 그때 용기를 냈다. '1학년 때 일 미안해'라고 채팅창에 입력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날 짝꿍을 바꾸게 됐을 때, 그 친구 옆자리에 앉는다는 걸 알게 되자 짝꿍이 되기 싫다고 소리 지르며 울었다. 담임선생님에게 혼난 뒤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울자마자 알 수 있었고, 이후 마주칠 용기가 없어 그 친구를 일부러 피했다.

11년 만에 나누게 된 대화에서라도 어떻게든 사과하고 용서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슨 일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저지른 일이 상대에게 기억나지 않을 만큼 별일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괜찮아. 어릴 때 일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친구의 답장을 보고 절망했다. 그 초등학교 교실의 소동은 그에게 11년간 잊히지 않을 만큼 싫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란 마음은 최악이었다.

남이 받을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던 일곱 살, 남이 받은 상처의 크기를 멋대로 판단한 열여덟 살의 기억은 삼십대 중반이 된 지금도 가끔 자신을 돌처럼 굳어버리게 한다.

오랜 시간 아파하다가 더는 자신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용기 낸 '미투'. 그 용기를 폄하하는 말이 흔하다. 10년도 더 지난 일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는거지, 그럼 그때 바로 아니라고 말했어야지, 쉽게 말한다. 피해자는 견딜 수 없이 아파했을 사건을 가해자는 가벼운 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기 쉽다. 살면서 남에게 상처가 됐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행동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속마음을 외면한 순간 역시 많을 것이다.

16년 전 갑자기 말을 걸어온 친구의 속마음은 안부를 나누기보다 사과를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리석은 동창에게 사과할 기회를 준 그가 고맙다.

미투 역시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부족한 심성을 가졌거나, 자기 마음조차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주는 사죄의 기회다. 부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대전 갈마동 타이어업체서 화재
  2. <속보>대전 타이어판매점 1차 진화 마치고 주변확산 차단 중
  3.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4.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5. 천안 폐기물재활용시설 화재...3억 3460여만원 피해
  1. 두 어머니를 향한 16년 간의 효심
  2.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3. 골프존 GDR아카데미 'GDR퍼포먼스' 출시
  4. '장애인과 함께 걸어온 10년'… 31일 세종서 자립생활 기념대회
  5. 한기대, 2026 STEP 모니터링단 해단식

헤드라인 뉴스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Merck)가 대전 생산센터 준공을 계기로 추가 투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전 바이오산업의 확장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KAIST와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연구시설 확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대전이 머크의 아시아·태평양 생산거점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열린 머크 대전 생산센터 준공식에서 머크 독일 본사와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대전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건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외국인투자지역 입주에 따..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30일 오전 10시 2분께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타이어 판매점에서 발생한 화재가 4시간 31분 만인 오후 2시 33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짙은 연기와 거센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재발생 직후부터 150건 이상의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으며, 대전소방본부는 대전시와 산림청 헬기 2대와 소방장비 98대, 인력 238명을 투입해 화재 진압과 방수 작업을 벌였다.소방당국은 최초 신고 18분 만인 오전 10시 20분께 관할 소방서의 모든 소방력을 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현장 주변에서는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도 진행됐다.타이어판매점..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한화이글스의 가을을 뜨겁게 달궜던 '대전 예수' 라이언 와이스가 다시 독수리 군단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 재도전에 나섰던 와이스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풀리면서 한화 복귀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와이스에게 걸려 있던 2027시즌 500만 달러 규모의 구단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와이스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와이스에게 올해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시즌이었다. 지난해 한화에서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