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세상만사] 누가 그를 뛰게 하는가

  • 오피니언
  • 기자수첩

[박새롬의 세상만사] 누가 그를 뛰게 하는가

  • 승인 2018-09-09 15:02
  • 신문게재 2018-09-10 21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서울역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선물용 과자를 고르고 있었다. 역 안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았다. 앉을 자리는 전혀 없었고, 주문은 끊어지지 않았다. 요거트스무디 한잔이요, 카페라떼 주세요. 음료를 주문하면 5분 이상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직원들은 쉴 틈이 없었고, 가방을 둘러맨 몸이 움직일 틈 역시 넓지 않았다. 겨우 원하는 과자를 골랐다. 얼른 계산을 마치고 매장을 탈출할 참이었다.

갑자기 카운터로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뛰어왔는지 말하는 목소리에 숨소리가 거칠게 섞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지금 바로 주세요."

"지금 주문이 밀려있어서요, 앞에 주문하신 분들 먼저 드리고 나서 드리겠습니다."



"제 거 먼저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기차 시간이 급해서요."

뒤에서 듣고 있기에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기차를 탈 시간이 임박했으면 음료를 사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급한 순서대로 주문을 접수한다면 여기서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나는 커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손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직원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다른 분들도 기다리고 계셔서요. 안됩니다.

그러나 남자는 굴하지 않았다. 제발 한 번 만요. 결국 직원은 알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1분여 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승차 플랫폼을 향해 헐레벌떡 뛰었다. 그 뒷모습과 조금 전에 들었던 '제발 한 번'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다 깨달았다.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남자가 마실 음료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

누군가 그에게 기차 탑승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커피를 사오라고 지시했고, 그는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허둥지둥 커피를 사러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해야 윗사람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었다. '남보다 내 거 먼저 달라'는 그 남자의 갑질은 '제발 한 번 만 좀 도와 주세요'라는 을의 호소였다.

대부분의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다. 그리고 노동을 마치고 나면 소비라는 권력을 누리는 고객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로서 갑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난 뒤, 소비자가 되어 분풀이로 갑질을 하는 을도 있다. 베이커리에서 본 그 남자처럼 갑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갑질은 그렇게 또 다른 갑질을 만든다.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다른 방향이 튀어나오는 풍선처럼. 누가 그 남자를 갑질에 동조하느라 뛰게 했을까. 먹고 사느라 뛰어다니기도 바쁜데, 나쁜 짓까지 하게 된 그가 조금은 가여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박용갑, 택시운송법·조세특례 개정안 발의… 택시 상생 3법 완성
  2.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 입학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3.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4. 박범계, 6·3 지방선거 불출마… "통합 논의 멈춰, 책임 통감"
  5. 천안시, 물총새공원 주차장 조성안 주민설명회 개최
  1. 첼리스트 이나영, '보헤미안' 공연으로 음악적 깊이 선보인다
  2. 황운하 “6월 개헌 위해 여야 국회 개헌특위 구성에 나서달라”
  3. 대전농협, '백설기데이' 홍보 캠페인 진행
  4. 금강환경청, 아산 인주산단에서 '찾아가는 환경관리' 상담창구 운영
  5.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헤드라인 뉴스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방파제 테트라포드(tetrapod)는 어떤 기준으로 설치될까? 지난 12일 오후에 찾은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수리실험동에선 해양구조물과 장비 등을 설치·운영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일상 속 당연시 여겨온 해양 구조물들의 설치 배경엔 수백번, 수천번 끈질긴 연구 끝 최적의 장비 규격을 찾아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들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다.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내 4005㎡ 규모의 수리실험동은 파도나 흐름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충남·북, 대전까지 통합해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 행정체계를 만들어볼 거냐는 한번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첨단·바이오 산업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이라는 주제로 열린 ‘충북의 마음을 듣다’에서 충남과 대전의 행정통합이 “급정거를 한 상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시들이 경쟁력을 올리려면 광역화가 시대적 추세가 됐다”며 “충청도 지금 대전, 세종, 충남·북으로 많이 나누어져 있는데, 지역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지역연합..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올해 치러지는 2027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서울권을 제외한 지역 의대 모집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충청권 7개 의과대학이 총 118명을 증원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인 충남대는 27명, 충북대는 39명이 늘어 각각 137명, 88명을 모집하고, 건양대와 순천향대 등 5개 사립 의대 역시 52명을 증원해 314명을 선발한다.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7학년도~2031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배정안'에 따르면, 2027학년도 지역 의대 32곳의 신입생 모집정원 증원 규모는 총 490명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