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인의 세상만사]책 읽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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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인의 세상만사]책 읽는 계절

  • 승인 2018-09-11 18:55
  • 신문게재 2018-09-12 21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지난 주말 늦은 여름 휴가를 보내던 중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볕은 따가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이런 날씨엔 어김없이 친구들과 함께했던 캠퍼스가 떠오른다. 당시 거의 모든 대학 생활을 같이 한 우리는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엎드려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같은 음식도 그곳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먹으면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그때 우리는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이승우를 읽었다. 얼마 안가 입이 간지러워 수다떠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 계절 그 볕과 바람을 맞았던 시간을 떠올리면 다시 독서 욕구가 샘솟는다.

밤새 에어컨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선잠이 들었던 게 얼마 전인데 엊그제부터는 에어컨 리모컨을 찾지 않는다. 침대 옆 창문을 아주 조금 열고 자면 새벽엔 추워서 이불을 끌어안게 된다. 가을이 왔다. 너무 더웠던 이번 여름, 가을이 오기는 하는 걸까 싶었는데 지난 가을의 추억이 생각나는 걸 보면 정말 가을이 왔다. 가을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독서다. 가을이 왔으니 본격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유독 가을에 책 읽는 정서가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먼저 가까이 앉은 회사 후배들한테 물었다. 후배 석이는 "여름은 덥고, 겨울은 따뜻해서 졸리고, 봄은 놀러 나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했다. 요즘 같은 여름엔 웬만해선 어딜 가나 시원하다고, 겨울은 보일러나 난방을 조절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가을에는 놀러 나가고 싶지 않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또 다른 후배 진이는 "책 한 권 들고 산책 나가기 좋은 날씨여서"라고 했다. 책 한 권 들고 잔디밭에 뒹굴던 나를 떠올리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그 이유가 '독서=가을'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기엔 약한 감이 있다.

구글링을 해 봤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5가지 이유'란 글을 보니 가을은 당나라 문호 한유가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했던 시기로, 날씨가 춥지가 덥지도 않아 적합하다는 거다. 두 번째 이유는 가을은 추수와 함께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 세 번째는 나름의 과학적 이유를 대고 있다. 신체 호르몬 중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 유독 가을엔 분비량이 적어지면서 흔히 '가을 탄다'고 하는 고독한 신체와 정신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차분한 정신이 독서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이라고 한다. 네 번째 이유는 사실 가을에 책이 제일 안 팔려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둔갑시켰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문화통치 일환으로 이 시기 독서를 권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 이유는 아주 오래전 중국에선 대나무를 돌돌 말아 책처럼 썼다고 하는데 이 대나무가 많이 나는 시기가 바로 가을이라고 한다.

내가 찾아본 글에도 있는 문구지만 '책을 읽는 이유는 많다.' 가을이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각 계절에 그 이유를 붙이라고 해도 다섯 개씩은 댈 수 있다. 대학 시절 한 수업에서 전공 교수님 가라사대 아무리 피곤하고 술을 먹어도 잠들기 전 책 한 쪽, 한 문장이라도 읽는 습관을 가지라고 했다. 물론 교수님 말씀에 계절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강박인지 습관이지 모르게 나는 술 마신 어젯밤에도 김환기 화백에 대한 책을 읽다 잠들었다. 때때로 음주 독서는 읽은 부분을 다음 날 또 읽어야 하는 후유증(?)을 낳지만 습관 자체는 들여도 무방할 것 같다.

가을이다. 가을이니까 책을 읽고 봄, 여름, 겨울엔 그때도 나름의 이유로 책을 읽자. 대전에선 매년 사서들이 100권의 책을 모아놓고 그중 한 권을 골라 함께 읽자는 재밌는 독서 운동을 하고 있다. 올해의 책은 편혜영 작가의 '죽은 자로 하여금'이다.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본성과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올 가을 우리가 '죽은 자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게 될지, 책 읽는 계절 가을을 만끽하며 책을 펼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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