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지식인을 바라보는 두려움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지식인을 바라보는 두려움

  • 승인 2019-09-18 13:17
  • 신문게재 2019-09-19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필톡컷-다시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의 '발칸의 도살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원래는 정신과 의사였다. 거기다 시인으로도 활동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내전 당시 잔혹한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인종 청소'라는 명분으로 7천여명의 무슬림을 학살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그는 세르비아 군인들로 하여금 이슬람계 여성들을 집단으로 강간하도록 사주했다. 의학에서 정신의학은 특별하다. 인간의 내면을 치료하기 때문에 지적·정신적으로 고도의 훈련을 받는 분야다. 그런데 그런 고매한 지식인이 인간 백정이 된 것이다. 도대체 지식인은 무엇인가. 더하여 한·일 갈등이 첨예한 지금, 한국의 지식인은 어디로 가는가.

소설 『척하는 삶』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얘기한다. 재미작가 이창래는 위안부의 참상에 충격을 받아 소설을 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진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교수, 목사, 방송국 관계자 그리고 위안부들과의 인터뷰. 그렇게 해서 한 편의 의미심장한 소설이 탄생했다. 여기서도 우리가 익히 듣고 몸서리치는 끔찍한 서사가 펼쳐진다. 반항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군인이 어린 'K'를 공터로 끌고가 집단 능욕하는 장면. 그리고 도마 위의 고깃덩이를 난도질하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해체한 후 득의양양한 군인들. 소설은 이 상황을 간략하고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반일 종족주의』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읽지는 않았지만 관련 기사가 많아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다. 더구나 저자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 아닌가.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학자 이영훈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부 격이다. 이들은 조선인의 강제 동원과 위안부의 목적을 부정했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에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도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이들 학자들은 어떤 신념으로 집요하게 본질을 외면하는가. 뉴라이트 진영은 끈질기게 일제의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친일파를 옹호한다. 이 패거리 지식인들은 친일 세력을 중용한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부터 이명박, 박근혜까지 궤를 같이한다. 2005년 정치학자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는 일본 극우잡지에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소설가 복거일 역시 친일파를 변호하는 데 열정을 바친 인물이다.

재작년엔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 메이저급 일간지에서 벌어졌었다. 중앙일보는 해마다 미당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미당문학상은 서정주의 시적 업적을 칭송하고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송경동 시인이 후보에 올랐다. 송 시인은 노동자 출신으로 진보 성향의 시민 활동가다. 그런 시인에게 미당문학상 후보라니, 송 시인은 단칼에 거부했다. 시인은 거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도대체 나와 미당이 어디에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서정주가 어떤 위인인가.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 노릇도 모자라 전두환 정권까지 군부독재의 언저리에서 떡고물을 얻어 먹으며 기생한 시인이다. 후보를 추천한 심사위원들도, 언론사 관계자도 내로라하는 지식인일진대 분별력을 의심케 한 해프닝이었다.



'지식인'은 본디 성직자나 학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19세기 말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지성인'이 출현했다. 지성인은 한마디로 '권력에 대항해 가시밭길을 택하는 자'로 정의된다. 에밀 졸라는 부당하고 거짓된 불의에 맞서 싸운 지성인이었다. 푸코는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과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이라는 진리 레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극우 어용 학자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지적 욕망이 지식의 발전을 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지금 참담한 수치심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건 누구의 몫인가.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명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의령군 자굴산 자연휴양림 겨울 숲 별빛 여행 개최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