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우리를 같음과 다름으로 나눈다. 공격은 선에서 시작된다. 2차원을 가르는 걸 넘어 3차원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선은 그 안에 우리를 가두거나, 타인을 가두는 걸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한다.
지난해 분양한 어느 아파트의 일부 동은 다른 동보다 높이가 낮고 어두운 색으로 완성됐다. 얼핏 아파트 상가 건물로 보일 정도다. 이 아파트는 주거지 빈주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대주택과 일반 분양을 한 단지 안에 짓는 '소셜믹스' 정책으로 지은 단지였다. 정책의 취지가 무색할만큼 임대주택은 티가 나게 지어졌다. 다른 소셜믹스 아파트 단지도 층을 나누고 동선을 분리해 구설에 오른 일이 있었다. 건설사들은 조합원과의 협의나 건축비 반영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게 돈과 사람이 그은 선이 '엘사(LH사는 사람)', '휴거(휴먼시아 거지)' 같은 비하 표현을 낳았다.
#공간을 나누는 격리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선(線)은 선(善)을 가장한다. 코레일톡 앱으로 ITX-새마을호 열차를 예매하려다 본 안내문은 노키즈존을 떠올리게 했다. '유아동반/편한대화 객차입니다. 유아동반/편한대화 객차는 다소 시끄러울 수 있으며, 지나친 소음이 다른 고객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유아와 함께 여행하는 성인이라면 5호차를 타라고 회유하는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는 일은 나이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일도 특정 연령과는 관계가 없는데. '유아동반'과 '시끄러울 수 있음'을 연결 지은 문장은 특정 연령의 '격리'를 유도하는 선이 됐다.
#이탈리아에는 정신질환자 보호소가 없다. 보호소를 폐쇄하기 위해 1978년 제정된 180호 법이 근거다. 법은 보호소에 새 환자를 수용할 수 없게 했고, 정신질환자에게 투표권과 바깥세상에서 살 권리를 돌려줬다.
보호소의 폐쇄를 이끈 프랑코 바잘리아는 이탈리아 고리치아의 정신질환자 보호소장이었다. 당시 보호소는 고문과 자살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미친 사람들을 격리하고 정상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보호소의 끔찍한 모습에 그는 시설 폐쇄를 결심한다. 지역 곳곳에 협동조합을 구성해 환자들이 격리를 벗어나 사회에 통합될 수 있게 도왔다. 1978년 이후 이탈리아 사회는 수용돼 있던 환자 대부분을 일원으로 품었다. 정신질환자 보호소라는 선 안에 갇혔던 '미친 사람'들은 이웃이 됐다.
#세상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병을 가진 채 태어나기도 하고, 빚을 진 채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운 환경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임대주택과 일반 분양주택의 생김새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부의 축적을 개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 아이들이 모두 시끄러울 것이며 곁에 있는 어른이 큰 소리로 이야기 하는 아이를 막지 않을 거라는 생각, 정신질환자는 격리돼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갖는 막연한 불안과 적대감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한 사람이 여대에 입학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같은 결일 것이다.
각자 그은 선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선 너머로 혐오의 시선마저 오간다. 나에게 좋은 선은 지켜야 할 선이고, 내게 불편한 선은 넘어야 할 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최선을 가장한 우리의 선에 누군가 갇혀있다면, 지우려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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