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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동의조차 없이 비정한 오빠는 집을 팔아버린다. 외숙모 또한 마치 벌레 대하듯 멸시한다. 집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그녀는 집을 나와 취직자리를 물색한다.
가까스로 가정부를 구한다는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의 집에 들어가 숙식까지 해결한다. 대인기피증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에버렛이지만 모드는 묵묵히 감내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때문이었다.
처음에 에버렛은 모드에게 "우리 집에서의 서열은 나, 개들, 닭들, 그 다음이 너"라며 냉대한다. 그처럼 구박을 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드에게서 에버렛은 점차 사랑을 느낀다.
한편 모드는 고통과 분노를 이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데 그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으로 소문난다. 딱히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닌 나이브아트(naive art =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일부 작가들이 그린 작품 경향)였음에도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
모드의 가치를 재인식한 에버렛은 청혼을 하게 되고 둘은 부부가 된다. 모드는 에버렛과의 재혼 전에 이미 아기를 낳은 전력이 있다. 오빠는 그 아기가 기형으로 태어나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남의 집에 팔려 정상인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이를 알아내고 먼발치에서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모드의 모습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모드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두 사람에게 있어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 뒤늦게 크게 깨달아 번뇌(煩惱)와 의혹(疑惑)이 다 없어짐을 나타내는 사자성어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오버랩 된다. 별개의 건이지만 이와 비슷한 장르의 책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다룬 저자의 체험 수기다.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서 생존한 정신과 의사가 발간한 책이다.
저자는 잔인한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부모와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소유물까지 다 빼앗겼으며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심정은 오죽했을까!
뿐만 아니라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뼈가 녹아내리고 피가 마르는 고통의 하루하루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견딘다'와 '아무리 힘들어도 의지만 있으면 자살하지 않는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경험자로서 맞는 말이다 싶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드 루이스와 빅터 프랭클은 공통적으로 기구절창(崎嶇切愴)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모드는 그림으로, 빅터는 저서의 출간으로 세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사견이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이라고 본다. 또한 계획만 있되 정작 실천이 없는 것은 불로소득(不勞所得)과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숨는다.
모드가 그림을 시작했을 때 에버렛은 모르는 척 하면서도 무언(無言)의 성원을 보냈다. 빅터는 스스로의 인내로 이겨냈다. 내가 작가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의 어떤 협연(協演) 덕분이었다.
여기에 출판사 사장님과 편집국장님의 관심과 성원이 포개졌다. 새삼 그 은공에 감사드린다. 따라서 이분들 또한 나로선 내 사랑(My Love)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이라는 요리엔 '사랑'과 '관심'이라는 양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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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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