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기록프로젝트] 재개발 속 소멸하는 대전의 히스토리… 삶의 기록 남겨야할 유산으로

[대전기록프로젝트] 재개발 속 소멸하는 대전의 히스토리… 삶의 기록 남겨야할 유산으로

재개발과 도시재생으로 사라져만 가는 대전의 마을
버리고 남길 것 선별해 가칭 '메모리존' 조성 필요
대전 히스토리, 과거와 미래 연결할 스토리텔링 남겨야

  • 승인 2020-04-12 17:48
  • 수정 2020-05-13 09:26
  • 신문게재 2020-04-13 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철거가 시작된 용문123지구. 사진=여상희 작가
철거가 시작된 용문123지구. 사진=여상희 작가

늙은 별의 최후는 소멸, 낡은 집의 말로는 철거다. 소멸한 별의 기억은 수 만 년을 달려와서라도 끝내 우리 곁에 도달하지만, 먼지 속에서 폭삭 주저앉아 버린 집의 기억은 되새겨 볼 방도가 없다.

골리앗의 펀치 닿자 툭툭 30년 전 우리 집이… 툭툭 50년 전 뛰어놀았던 골목이… 한 시대가 사라진다. 대전은 조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중이다. 기억될 기록은 없다. 정훈 시인의 고택이 그러했고,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그럴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결코 부정사가 아니다. 침체 된 도시를 일으키는 시의적절한 선택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기억과 보존을 재개발과 도시재생에 대입해본다면 같은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딱딱한 명사에 감성과 온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자발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이했을 때, 가슴 벅찬 반짝임으로 남고자 하는 일말의 욕심이다.

중도일보는 2020년 연중 기획 시리즈 '대전기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버리고 남길 것을 선별해 기록물과 물리적 유산이 보존될 '메모리존(가칭)'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은 히스토리가 없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스토리텔링의 단서도 없다. 대전시 승격 100년을 앞둔 지금 '기록'을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훗날 오롯이 대전에 남겨질 문화유산이자, 수년이 지나도 밑천이 드러나지 않을 히스토리의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도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
2. 무너지는 도시, 대전이 사라진다
3. 다가오는 재개발, 그들의 이야기
4. 도시재생의 끝은 '메모리존'
5. 정체성 없는 대전, 100년을 준비하자 

지난해 철거된 목동 3지구 모습(사진 여상희 작가)
지난해 철거된 목동 3지구 모습. 사진=여상희 작가
기록 속에서 대전을 찾다 보면 회덕과 진잠, 공주만 있을 뿐 큰 '大' 밭 '田'자를 쓰는 '대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전은 일제강점기 철도가 놓이고 대전역이 생기면서 비로소 대도시의 형태를 갖춘다. 대전의 역사가 유난히 짧고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더욱 귀했다. 굴욕적인 시대를 방증하기에 대전이 가진 근대 문화적 요소는 꽤 풍부했었다. 그러나 수년 사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뾰족집이 제자리에 있고 정훈 고택이 남아 있던 그때와 소제동 관사촌이 무너지고, 목동 선교사촌이 철거된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졌다.

대전에 있는 몇몇 근대문화유산은 일방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았다. 일부는 재개발에 휩쓸렸고, 일부는 보존 가치를 몰랐던 무지함으로 무너졌다. 대전의 '히스토리'는 이렇듯 허무한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근대 유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의 주체인 대전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히스토리도 흔적없이 소멸한다.

지난해 여름 대전시 중구 목동 3구역이 철거됐다. 이곳에는 250여 채의 주택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하숙집, 목원대가 후원해 지은 선교사촌, 1세대 건축가가 설계한 집,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피아노, 그리고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발견됐다. 근대와 현대의 역사가 점철됐던 목동 3지구의 기록만 보더라도 '도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꽤 선명한 지표들로 설명된다.

목동 3구역 지역리서치 사업에 참여한 여상희 작가는 "헐리고 헐리다 보면 별거 아닌 도시가 될 게 뻔하다. 가치 있는 유산이 나온다면, 현장보존이 어렵다면 해체해서라도 보존하려고 노력할 때"라고 강조했다. 별 게 아닌 도시와 별 게 있는 도시는 결국 어떻게든 보존하려는 노력, 그 한 끗 차이라는 얘기다.

2019 지역리서치 사업에 남겨진 목동 3지구의 영상기록물
2019 지역리서치 사업에 남겨진 목동 3지구의 영상기록물
2019 지역리서치 사업에 남겨진 목동 3지구의 영상기록물1
2019 지역리서치 사업에 남겨진 목동 3지구의 영상기록물

경남 창원시는 도시를 기록하는 선례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창원시는 옛길과 문화유적을 보존한다는 도시환경 정비 조례에 맞춰 재개발 구역 4곳에서 전시와 조형물 형태로 '지역 흔적 남기기'를 완성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본부도 가로주택 정비 지역에 지역 흔적 남기기를 추진 중이다.

대전시도 첫발은 뗐다. 2015년과 2019년 지역리서치 사업으로 재개발을 앞둔 지역의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를 해왔고 올해도 소제동과 삼성동을 중심으로 기록사업을 추진한다. 다만 조사 과정과 결과물 공유, 보존 부분에서는 여전히 일회성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전시와 학계 전문가들은 본보가 제안한 재개발 구역 내에 세워질 가칭 '메모리존'에 대해 공감했다.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은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 몇 군데만 살펴봐도 근대 건축 등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다. 대전의 지역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인데, 민간 개발이다 보니 보존 방안이 아쉬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준호 대전시 문화유산과 팀장은 "재개발 지역에서 나온 기록과 유산을 메모리존으로 남겨 만들고 보존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며 "올해부터 시·도마다 지방등록문화재를 지정할 수 있다. 메모리존을 근대건축물로 활용한다면 상징성, 기록성 측면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는 "재개발에 앞서 보존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개발로 변하고 난 뒤에 여기가 어떤 장소였는가 떠올리는 기억의 잠식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동네는 볼 것도, 남길 것도 하나없어." 재개발 구역의 사람들은 동네가 사라지는 허탈함을 가슴에 혹은 뼈에 묻고 마을을 떠나고 있다. 각각의 삶은 가슴에 남겠지만 한 시대를 함께 한 우리 모두의 삶의 궤적은 우리가 살았던 바로 '그곳'에 새겨야 한다.  

 

이해미·김성현·이현제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2.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3.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4.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5.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기록누락 등 부실도
  1.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2. 고교학점제 취지 역행…충청권 고교 사교육업체 상담 받기 위해 고액 지불
  3. 이철수 폴리텍 이사장, 대전캠퍼스서 ‘청춘 특강’… 학생 요청으로 성사
  4.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치매안심센터 찾아 봉사활동

헤드라인 뉴스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속보>교정시설에서 수용자의 폭력이나 자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금속보호대가 대전교도소에서 1년간 122차례 사용되고 한 번 사용되면 평균 3시간 50분간 수용자에게 착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금속보호대를 이용해 6시간 이상 수용자를 결박한 사례도 16차례 있었는데 사후 전자기록을 남겨놓지 않거나 부실작성 등 보호장비 사용에 대한 문제가 추가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전교도소장에게 발송한 직권조사 결정서를 분석한 결과 폭력이나 자해 위험 수용자를 관리할 목적의 여러 보호대 중 결박 강도에 따라 통증이 뒤따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RISE 재구조화, AI 인공지능 활용 등 교육 분야 주요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학문별 대가로 선정된 교수에 대한 정년 제한을 풀고, 최고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6대 국정과제를 위한 25개 실천과제(공동주관 1개 국정과제, 3개 실천과제 포함)를 최종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현해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에 나선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이재명 새 정부가 오는 12월 30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청사 개청식을 예고하면서,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를 위한 동반 플랜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수년 간 인구 정체와 지역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시에 전환점을 가져오고, 정부부처 업무 효율화와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해졌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산술적 대응은 당장 성평등가족부(280여 명)와 법무부(787명)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셈법으로 빠져 나가는 공직자를 비슷한 규모로 채워주는 방법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