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하종현] "한국미의 정수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것"

  • 문화
  • 문화 일반

[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하종현] "한국미의 정수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것"

마포와 캔버스 뒷면에 안료 밀어넣는 독창적인 배압법
접합 시리즈 색은 단청과 한국전통악기에서 영감 얻어
김환기, 유영국, 한묵 교수님 습성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2019년 부산 이어 대전서도 첫 전시 "내 작품 위안되길"

  • 승인 2020-10-29 15:34
  • 신문게재 2020-10-30 7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하종현 화백은 우리나라 단색추상화 1세대다. 앵포르멜과 한국 미술계 최초 전위작가 모임, 접합 연작 등 그가 걸어온 길은 오롯이 미술계의 역사가 됐다. 2019년 이동훈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중도일보와 대전시립미술관이 공동주관한 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자로 하종현 화백이 선정됐다.

하종현 화백은 한평생 그림을 그리고 세계를 돌며 전시를 했지만 좀처럼 대전과의 인연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아쉬움은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을 통해 하종현 화백의 생애 첫 대전 개인전이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중도일보는 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하종현 작가 특별전을 기념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온라인 좌담회를 진행했다. 앞서 보낸 질의서에 하종현 화백이 답변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과 함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하종현인물
사진=하종현문화재단 제공
[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자-하종현 화백 온라인 좌담회]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이동훈미술상'은 대전뿐 아니라 한국미술계에 큰 의미를 주고 있는데, 선생님의 수상과 작품 전시는 상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선생님은 1974년부터 마포를 이용해 캔버스 뒷면에서 안료를 밀어 넣는 이른바 '배압법'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만들어 냈다. 이는 선조들이 사용했던 회화기법을 통해 동양적인 정신으로 재 승화시킨 역발상이다. 진흙과 지푸라기를 배합해 바르는 흙벽, 삼베로 짜내는 한약의 진액 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미의식도 보인다. 이는 어떻게 구현된 것인가.

▲하종현 화백: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전쟁을 겪었고,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온갖 궂은 일이라곤 가리지 않고 하던 그 시절은 지금 나에게 중요한 자산을 선사해준 배경이다. 고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캔버스를 살 돈이 없었다, 미술 작업을 꾸준히 하고자 미군 군량미를 담아 보내던 올이 굵고 거친 마대자루를 발견했고, 이를 값비싼 캔버스 대신 사용했다. 나이프로 물감을 마대 위에 펴 바른 다음 마대자루의 뒷면에 두꺼운 물감을 바르고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방식 등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 시절엔 구하기 쉬웠던 재료와 나의 주변의 흔한 것들, 예를 들어, 철조망, 신문, 마대천을 사용했고, 이러한 재료들과 작업방식이 제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미술에서 색은 곧 정신의 빛이며, 정신의 빛은 곧 색이다. 선생님께 색(色)은 어떤 의미인가.

▲하종현: 최근에 새로 '접합' 시리즈 작품에 도입했던 적색, 청색, 다홍색은 예를 들자면, 단청과 한국전통악기의 화려한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이외에 색감은 도자기나 고색창연한 기왓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강력한 물감으로 작품의 화면을 장악하게 했고, 이는 젊은 시절 무한대로 쏟아져 나왔던 에너지를 상상하며 작업 정신의 깊이를 다지려는 태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일상생활 곳곳마다 우러나오는 문화의 색을 표현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Conjunction 20-67,180x180cm,2020
Conjunction 20-67,180x180cm,2020
▲선승혜: 문화의 색에서 정신의 빛이 보인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문화의 색이 되는 예술가의 포용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최영근: 선생님께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로 국제 화단에서 한국 추상미술 단색화의 거장이다. 화업 초기 시절인 고뇌가 깊었을 것 같다.

▲하종현: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줄곧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추상적인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기존 회화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고 보편적이지 않은 재료들과 작업 방식을 구축해오면서 작업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추상으로 시작해 신문지, 스프링, 철조망 같은 소품들로 작업하기도 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다.

▲최영근: 그 시절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누구인가.

▲하종현: 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준 작가는 아무래도 늘 가깝게 뵐 수 있었던 故 김환기, 유영국, 한묵 교수님이다. 그분들의 작품세계와 열심히 작업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봐오며, 가르침 외에도 교수님들의 습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선승혜: 최 위원장님께서 영향을 받은 선배 세대를 이야기하셨으니, 저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메시지를 여쭙고 싶다.

▲하종현: 내 작품의 흐름을 보면 경향의 변화가 많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다.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좋은 작품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 활동을 위해서는 고통도 낙으로 삼아야 하고, 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아픔을 견딜 준비가 돼야 한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작업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요즘은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서두를 것 없이 시간이 많이 있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식상은 하지만 '한 우물을 파라'고 조언한다. 잠깐 파다가 물이 안 나온다며 다른 데 눈을 돌리면 평생 '진짜'를 못 찾게 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한 우물을 파게 되면 정말 좋은 물이 나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돌아보면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기에 젊은 후학들에게 ‘파이팅’ 하시라 전하고 싶다.

conjunction74-26, 108,9 x 222,9 cm, 1974(MoMA 전시작품)
conjunction74-26, 108,9 x 222,9 cm, 1974(MoMA 전시작품)
▲최영근: 최근 미국 뉴욕 'MoMA'미술관에서 선생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해외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하종현: 뉴욕 현대미술관은 확장공사를 마치고 재개관을 한 뒤에 소장품 전이 진행됐다. 대규모 전시로 세계 미술가들의 이목이 쏠려있는 이 전시에 작품이 전시되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큰 영광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접합(Conjunction 74-26)'은 1974년에 제작된 초기작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이외에 최근 몇 년 동안 LA, 파리, 런던, 뉴욕, 밀라노, 중국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해 왔고 국내에선 4년 만인 2019년 부산 국제갤러리에서도 부산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수상 특별전도 대전에서의 첫 전시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 런던 Almine Rech (알민레쉬)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하고 있다.

▲선승혜: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미를 전파하고 계신다.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이 '한국미의 정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하시겠는가.

▲하종현: 한국미를 알고자 한다면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내 주변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한국이 아름답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친근하고 가까이하면 한국의 미를 비로소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선승혜: 생애 첫 대전전시다. 좀처럼 선생님의 작품을 접할 수 없었던 대전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하종현: 처음으로 갖는 대전 전시회는 내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작품을 통해서 대전 시민들과도 가까워진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힘든 시기에 작품 감상할 대전 시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한다. 이번 대전시립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계기로 대전 시민들과 더 좋은 작품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정리=이해미 기자 ham7239@

탄생
탄생 67-1,2, 1967, 캔버스에 유채, 꼴라주, 200x300cm(2000 재재작) (이동훈미술상 본상 특별전 전시 작품)
접합 17-96, 2017, 마포에 유채, 259X194cm
접합 17-96, 2017, 마포에 유채, 259X194cm (이동훈미술상 본상 특별전 전시 작품)
최영근 운영위원장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선승혜 관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2.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3. "철도 폐선은 곧 지역소멸, 대전서도 관심을" 일본 와카사철도 임원 찾아
  4. 전기차단·절연 없이 서두른 작업에 국정자원 화재…원장 등 10명 입건
  5. 30일 불꽃쇼 엑스포로 차량 전면통제
  1. <인사>대전시
  2. 충남대-대전시 등 10개 기관, ‘반려동물 산업 인재 양성 업무협약’
  3. 대전시 제2기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4. 대전시, 반려동물산업 육성에 힘쏟는다
  5. 김태흠 충남지사, 천안아산 돔구장 건립 필요성·추진 의지 거듭 강조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李정부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추진에 대전 관가 설왕설래

이재명 정부가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것을 둘러싸고 지역 관가에서 설왕설래가 뜨겁다. 일선 현장에선 76년 만에 독소조항 폐지 기대감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 문화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환영기류가 우세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일각에선 개정안 국회 통과 때 자칫 지휘체계가 휘청이면서 오히려 주민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6일 대전 지역 공직사회에 따르면 인사혁신처가 전날 입법 예고한 국가공무원법 상의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둘..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대전시는 26일 시청 응접실에서 대전관광공사, ㈜인섹트바이오텍과 함께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를 위한 공동브랜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캐릭터 중심의 제품을 넘어 지역 재료·스토리·생산기반을 더 촘촘히 담아야 한다는 취지로 대전의 과학·바이오 정체성을 상품에 직접 반영하려는 시도다. 이번에 출시 준비 중인 '꿈돌이 닥터몽몽'은 인섹트바이오텍의 연구 포트폴리오로 알려진 자연 유래 단백질분해효소(아라자임) 등 바이오 효소 기술을 반려동물 간식 제조공정 단계에 적용해 기호성과 식감 등 기본 품질을 고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인섹..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열띤 경쟁 속에서 펼쳐진 공주시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5일 공주환경성건강센터에서 공주시와 중도일보가 주최·주관한 '2025 공주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안전 상식을 재밌는 퀴즈로 풀며 다양한 안전사고 유형을 학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74명의 공주지역 초등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골든벨을 향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본 대회에 앞서 심폐소생술 교육이 먼저 진행되자 학생들은 교사의 시범을 따라가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라고 묻거나 친구에게 압박 리듬을 맞춰보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