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픔과 성찰이 담긴 이인상의 검선도(劍仙圖)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픔과 성찰이 담긴 이인상의 검선도(劍仙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11-2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조선 시대에는 신분 차별이 극심했다. 신분제는 정권 유지와 사대부 및 양반 위상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다. 서얼은 사족(士族) 혈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족 아버지에, 어머니가 첩이거나 미천한 신분인 경우를 말한다. 축첩도 임신도 남자 스스로 한 일 아닌가? 자신이 만든 가시관을 자식에게 씌운다. 참 생뚱맞다 아니 할 수 없다.

서얼은 초시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등 관직 등용 금지가 법제화되기도 하고, 재산상속, 봉작, 제사 등 매사에 차별이 있었다. 제한된 품계로 등용하자는 한품서용(限品敍用), 일정 돈을 내면 신분이 바뀌는 서얼허통(庶孼許通) 등 조선 시대 내내 논의가 지속된다. 허통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18세기 말에는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 서얼 출신이 벼슬도 하고 이름도 얻는다. 갑오경장 이후 서얼 출신이 대거 고위직에 진출한다. 적서 논쟁이 끝난 것일까? 비로소 서얼 차별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도 집단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암암리에 피해자가 된다. 문화의 속성이다. 마을에 혼담이 오갈 때면 서얼 이야기도 함께 오갔던 기억이다.



이런 신분 갈등은 고전의 주요 소재나 주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군담소설 '박씨전'은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을 영웅으로 등장시킨다. '홍길동전'에서는 서얼 출신 홍길동이 호부호형(呼父呼兄)조차 하지 못하는 차별에 가출을 결심한다. 신분을 타파하고 사랑에 성공하는 해피엔딩 '춘향전'의 춘향 어머니 월매는 기생이었다.

서얼,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굴레가 얼마나 황당했으랴. 같은 인간으로 모름지기 자신만 쓰일 장처가 없다니 얼마나 분했으랴? 형벌일까, 삭일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심상은 얼마나 깊었으랴? 냉대와 폄하, 가족과 이웃이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천애고아(天涯孤?) 처지를 얼마나 성찰했으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가슴앓이는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인상(李麟祥, 1710 ~ 1760, 문인화가)은 3대에 걸쳐 대제학을 낳은 명문 후손이다. 1735년(영조11)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증조부가 서자였던 탓에 본과에 응하지 못한다. 서출이지만 시문과 학식이 뛰어나 문사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서화에 모두 뛰어나 후학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서체를 활용한 필법이 특기였으며, 그림 스승은 명확하지 않고, '개자원화전'에서 화법을 터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조와 강개한 성격이 그대로 투영, 담백하고 투명한 색감으로 멋과 단아함을 만들어낸다. 현감, 찰방 등 벼슬을 하긴 하였으나 늘 가슴앓이로 시달린다.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고 탐관오리의 부정을 참지 못하는 강직함 때문에 관찰사와 다투다 벼슬을 떠난다. 단양에 은거하며 시서화로 여생을 보낸다.

ㅎㅎㅎㅎ
이인상, <검선도(劍仙圖)>1654년 이후, 종이에 담채, 96.7×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은 이인상 작 '검선도(劍仙圖)'이다. "중국인이 그린 검선도를 방작(倣作)한 이 그림을 취설 옹에게 바친다. 종강의 비오는 날에 그리다(倣華人劒僊圖奉贈醉雪翁?鐘崗雨中作)"라는 이인상의 관지가 쓰여 있다. 서울대 장진성 교수에 의하면 취설(醉雪)은 유후(柳逅, 1690~?)를 지칭한다. 종강모루가 1754(영조 30)년에 이인상이 축조한 조그만 정자여서, 그림은 40대 후반에 그린 것으로 본다. 검선은 도교 8선의 하나인 당나라 신선 여동빈(呂洞賓)으로 추정한다. 마법의 칼과 채찍을 들고 있는 학자로 묘사된다. 유후 역시 서얼이었으나, 눈처럼 흰 수염에 붉은 얼굴로 걸어 다니는 신선이라 불렸으며, 고결하게 산 것으로 회자된다.

등나무로 보이는 넝쿨이 타고 오른 노송과 비스듬한 또 한 그루 소나무가 있다. 그 앞에 긴 수염 휘날리며 검선이 정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옆에는 뽑다가 만 검이 노송 등걸에 기대어 있다. 장송은 도덕, 절개, 정의를 상징하지 않는가? 검은 냉혹한 양면성으로 엄단의 상징이다. 보는 이에 다르겠지만, 장진성 교수는 은일자(隱逸者)의 고고한 기상, 무욕(無慾)의 경지, 불의에 맞서고자 했던 고결하고 올곧은 정신, 세상의 온갖 타락과 오염에 물들지 않으려고 했던 결연한 의지를 그림 속에 투영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으랴. '서얼에 의한, 서얼을 위한, 서얼에 관한' 그림이란 주장이다.

예술 분야 중 소리가 가장 추상적이라 한다. 추상적일수록 감동과 확장성이 크다. 그림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언어나 몸짓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기에 공유 가능한 추상성을 부단히 추구하는 것이다. 암시와 상징도 추상성의 하나이다. 이인상은 모호성, 암시성을 그림에 활용한다.

편 가르기, 차별, 붕당은 분명 시대착오적 행태이다. 프레임을 씌우는 것 또한, 거짓과 차별화의 백미 아일까? 차별은 개인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국가를 역사를 아프게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3.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4.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5. 천안문화재단, 2026년 '찾아가는 미술관' 참여기관 모집
  1. 백석대, 천호지 청춘광장서 청년·시민 협력 축제 성료
  2. 단국대병원, 2025년 감염병 대응 유공기관 선정
  3. 상명대 창업지원센터장, '창업보육인의 날' 기념 충남도지사상 수상
  4. 한기대 '다담 EMBA' 39기 수료식
  5. 나사렛대 평생교육원-천안시장애인평생교육센터 MOU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