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망자를 위한 진혼굿…서쪽을 향해 노를 젓다

  • 문화
  • 문화 일반

[리뷰]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망자를 위한 진혼굿…서쪽을 향해 노를 젓다

마당극패 우금치 '적벽대전' 극장버전 관람
미디어파사드 층고 높은 별별마당과 조화
이념전쟁으로 희생당한 무명들의 삶 담아내
대전의 숨은역사 들춰낸 예술적 기획력 눈길

  • 승인 2020-11-27 10:21
  • 수정 2020-11-27 14:59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임재근2
서천꽃밭으로 가려는 망자들과 쑥부쟁이들의 춤. 사진=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팀장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흠뻑 진혼굿에 취한 밤이었다. 산내 골령골에 묻힌 이름 없는 무명들이여, 부디 편안히 잠들길 그 밤 그렇게 기도했다.

마당극패 우금치는 지난 24일 분단 70주년 지역특화콘텐츠개발 미디어퍼포먼스 공연인 '적벽대전(赤碧大田)'을 선보였다.



지난달 23일과 24일 이틀간 옛 충남도청 야외무대에서 선보였던 공연을 '극장버전'으로 변형한 것으로 향후 대전의 역사를 알리는 지속 가능한 공연으로의 변모를 확인한 자리였다.

이번 공연은 미디어파사드 형식과 마당극의 절묘한 조화가 특징이다. 층고가 높은 우금치 별별마당 공연장이 지닌 특수성은 사방이 무대가 되는 무한한 변형이 가능한 미디어파사드(외벽에 LED 조명을 비춰 표현하는 기법)와 만나 그 효과가 더더욱 도드라졌다. 이로 인해 무대의 경계는 사라지고 관객은 배우들과 동화돼 절절한 아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됐다.

민간학살을 보여주는 장면
민간학살을 보여주는 장면. 사진=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팀장
'적벽대전'은 이념의 굴레 속에서 희생당한 애통하고 원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70년을 흙더미에 묻혀있다가 백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무명들의 한(恨)은 옆집 미순이네, 앞집 용철이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극은 총 4장으로 나뉜다. 1장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시작으로 대전이라는 배경을 담는다. 2장은 어둠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서천꽃밭으로 가기 위해 쑥부쟁이들과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연습에 들어간다. 그러나 누군가의 분노와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고 스멀스멀 밀려오며 과거에 잠식된다.

3장은 영혼들을 붙잡는 과거의 기억이다. 일제강점기, 제주 4.3, 여순사건, 대전형무소 학살,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이념전쟁의 폐해로 평범했던 영혼들은 억울한 죽음으로 묻힌다. 현충일 추념식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이제는 주름 가득한 노인이 된 미순이와 용철이가 무명의 영혼들에 술 한 잔과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 영혼들의 한은 조금씩 옅어지고 다시 서천꽃밭으로 가기 위한 춤을 춘다.

극의 하이라이트는 생생한 희생의 전말이다. 친일과 애국, 남과 북으로 나뉜 이념이 무고한 죽음을 낳았고, 그들의 죽음은 여전히 진상규명 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예술은 역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던진다.

임재근
망자들에게 절을 하는 미순이와 영철씨. 사진=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팀장
특히 올해는 13년 만에 골령골 유해 발굴이 이뤄졌다. 약 40일간 250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미성년과 여성 희생자들의 유해 또한 세상으로 나온 역사적인 해다. 그렇기에 우금치의 '적벽대전'은 시기적으로 알맞은 타이밍에 우리에게 다가온 고마운 공연이다.

모든 장면이, 모든 대사가 가슴에 박힐 만큼 아팠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동요를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푸른하늘 은하수~로 시작되는 '반달'은 망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서천꽃밭을 향하는 여정과 유사해 극의 오프닝과 엔딩곡으로 탁월했던 선택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적벽대전'이 단발성 공연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전의 역사를 훑는 대전형무소와 산내 골령골의 이야기는 모든 세대와 공유해야 하는 진실이기에 공연이 계속될 수 있는 기회는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첫 의도가 야외공연으로 기획된 만큼 극장 버전은 다소 한계가 느껴졌다. 좁은 동선과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관객은 향후 지속적으로 논의를 통해 연속성 있는 공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민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진혼굿은 슬펐고, 7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망자들과의 감정의 교류는 뜨거웠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다.

산내 골령골에 묻힌 무명들이여, 부디 증오를 떨치고 억울함을 풀고 부디 서천꽃밭으로 가시길.
이해미 기자 ham723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4.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