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사람과 자연이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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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사람과 자연이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은봉(시인, 대전문학관 관장, 광주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1-03 15:15
  • 신문게재 2021-11-04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이은봉
이은봉(대전문학관장, 시인)
가을의 끝이다. 세상이 온통 노랗고 빨갛다. 들에서는 이미 추수가 끝나가고 있고, 산에서는 아직 나뭇잎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고 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가슴이 텅 비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불현듯 외롭다.

나만 외로운가. 사람은 다 외롭다. 사람이 되면서 외로움, 곧 고독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진 존재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외롭지 않으면, 고독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한때 사람은 자연의 하나로, 신의 부분으로 살 적도 있었다. 에덴에서 살 때가 바로 그랬다. 하지만 그때의 사람은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다. 풀잎 혹은 나뭇잎, 땅강아지 혹은 굼벵이, 노루 혹은 토끼! 그때의 사람,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사람은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외로움이, 고독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외롭지 않으면, 고독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외로움 혹은 고독은 사람이 자연과 분리되면서, 신과 분리되면서 받은 선물이다. 자연 혹은 신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사람은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타자를 지각할 수 있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 사람은 사람이 된다.



자연의 하나로 살 때, 곧 신의 부분으로 살 때 사람은 외롭지 않았다. 그때 사람이 아닌 사람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문화라는 것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식물일 때는 식물로 제자리에서 광합성 작용을 하면 되었고, 동물일 때는 동물로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으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동물처럼 먹이만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살 수 없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끊임없이 문화라는 것을 만들게 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사람이다. 문화는 본래 자연이나 신을 갈고, 다듬고, 고치고, 꿈꾸며 만드는 것! 하지만 '코로나'라는 엉뚱한 생명체 때문에 최근의 사람은 한동안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야 했다.

코로나 또한 자연의 하나……, 코로나라는 놈은 한동안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곧 물(物)로 살게 했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나무 비슷한 것으로, 풀 비슷한 것으로 살게 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사람을 신의 부분으로, 자연의 하나로 살게 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사람이 아닌가. 코로나로 인해 나무 비슷한 것으로, 풀 비슷한 것으로 살던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권태와 짜증이다. 권태와 짜증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동일한 짓을 반복할 때 사람에게 부여되는 숙명이다. 권태와 짜증, 이것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고독이 된다. 고독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우울이 되고, 우울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누구라도 삶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더는 권태와 짜증을, 고독과 우울을 견디지 못해 지난 10월 24일 시를 쓰는 친구들이 모처럼 함께 모였다. 계속되는 격리와 소외, 거듭되는 짜증과 권태, 고독과 우울 속에서도 시집을 낸 시인들이 꽤 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친구들은 시집을 낸 친구들에게 향기로 가득한 꽃다발 하나씩을 선물했다. 실제로는 시집을 간행한 내가 시집을 간행한 내게 선물하는 꽃다발일 수도 있다. 내가 내게 꽃다발을 선물한들 어떠랴. 그런 뒤에는 모두들 최근에 쓴 시도 한두 편씩 읽었다.

벌써 11월의 초이다. 이달 중순이면 명실공히 위드 코로나 시대로 진입한다고 한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한다. 너도, 나도 그동안 참으로 고생했다. 나는 지금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기 위해 두 손을 흔들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으로 나가기 위해 힘차게 연습을 하고 있다. 열중 쉬엇! 차렷!! 준비,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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