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원로元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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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원로元老

김희정 시인(미룸 갤러리 관장)

  • 승인 2021-12-08 17:41
  • 신문게재 2021-12-09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김희정 사진 (1)
김희정 시인(미룸 갤러리 관장)
한 해가 저문다. 또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슬픈 일만은 아니다. 삶의 연륜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나열한 문장들은 잘 살고 있는 분들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 나도 꿈꾼 적이 있다.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나에게 믿음도 주었다. 가끔씩 믿음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흉내는 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보다 저무는 해가 더 크게 보여 여러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찾아든 것은 그렇게 살지 못한 후회이다. 그 때 이렇게 했다면. 그때 이런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해 마지막 달력 앞에서 지금의 모습은 아닐 텐데. 생각할수록 후회는 점층적으로 증가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슬플 때가 있다. 몸은 아프고, 지갑은 얇아지고, 젊은 사람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루해를 보며 시간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라도 들 때면 우울하다.

곱게 늙어 보이는 노부부를 보거나 나잇값하고 사는 분들을 만나면 부러움을 넘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거두어들인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변할 수도 없고 몇 번 흉내를 내어보아도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모습으로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쉽지 않아서 그런 삶이 얼마나 많은 실천을 요구하고 자신에게 한없이 엄해야 하는지를 알기에 일찍 포기했다.



요즘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럼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에게는 끝없는 잣대를 가져다 대는. 그걸 넘어 나이만 먹어 노욕만 부리는 사람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마는데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지 맞장구를 치고 있는 나를 본다. 이웃의 불편함에 눈 감은지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더듬어지지 않는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반복되다 보니 원로라는 이름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한때 나도 저런 분들처럼 늙고 싶었다. 나만 아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가끔 세상 걱정도 하고 한발 더 나아가서 내일을 생각하는 눈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생각으로 끝나고 여기까지 왔다. 이런 후회가 귀가 순해질 나이에 오다 보니 불현듯 찾아든다.

나이만 먹으면 원로가 되면 좋겠다. 부러워하다 보니 별생각을 다한다. 내가 가지 못한 길, 내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 욕심이 생겨 일어나는 일인데 나이 탓으로 돌리고 얄팍하게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데 말이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신이 나에게만 특혜를 준다고 해도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거리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원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비록 내가 원로는 되지 못할망정 내가 하는 일에서 이런 분들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가 덜 밀려온다, 이런 분들마저 만나지 못하고 나는 그런 이름은 가까이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면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몇 주 지나고 나면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고맙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무서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바랄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남은 시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생은 80부터라고 말하는 시대인데 말이다.

그 옛날 엄마가 그랬다. 엄마 일을 참견하는 나를 보고 아직 어린 것이 영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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