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증약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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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증약터널

이희준 건축학박사(대전시문화재전문위원)

  • 승인 2022-02-23 16:32
  • 신문게재 2022-02-24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이희준=건축학박사(대전시문화재전문위원)
이희준 건축학박사(대전시문화재전문위원)
2010년 7월 한 여름날이었다. 30도가 훌쩍 넘는 매우 무더운 날씨에 대전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오래된 건물이 있는지 수소문하면서 근대문화유산을 조사하러 다니던 중 세천동에서 아저씨 한 분이 '터널'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건데 안 쓴 지 오래됐어. 내가 어렸을 때는 그 터널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옥천으로 오가는 버스도 다니고 그랬어. 지금은 안 쓰지만…."



세천체육공원 옆 산길을 따라 우거진 수풀 속으로 300여 미터를 걸어 들어가 보니 멀찌감치 나무와 풀들에 가려진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터널'이었다.

이후 연구를 통해 이 '터널'은 3개로 이루어진 '증약터널' 중 제1터널로 1904년에 완공되었으며, 이를 기념해 당시 주한일본공사였던 하야시곤스케(林權助)가 '악신경분(嶽神驚奔)' 이라고 쓴 액석(터널 상부에 설치한 글귀를 쓴 돌판)을 설치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악신경분'은 '산신이 놀라 도망갔다'라는 뜻으로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신성한 산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두려워하자 강제로 노역을 시키며 우리 선조들의 민간신앙과 문화를 조롱한 것이다.



위의 내용은 대전의 대표적인 철도문화유산인 '증약터널'을 조사한 과정을 간략히 서술한 것이다.

대전시는 2003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쳐 '근대문화유산목록화보고서'를 발간했다.

근대기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과 산업시설물, 생활 유산 등을 조사해 현황을 파악하고, 보존과 활용 가치를 평가해 보존계획과 함께 등록문화재 지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증약터널은 2003년도 보고서에는 빠져 있었는데, 이렇게 조사목록에서 빠져 있거나 목록에 있었지만 멸실된 대상물들을 확인하는 등 보완작업을 위해 2010년에 다시 조사가 진행되었을 때 발견됐다.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그동안 증약터널의 역사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알리는 여러 활동이 진행되면서 등록문화재 지정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2010년 중도일보에 증약터널을 소개한 데 이어 2014년에는 대한건축학회에 논문을 게재해 내셔널트러스트 '소중한 문화유산상'을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대전의 철도문화유산' 책자를 발간해 대전시민과 다른 지역 탐방객들에게 증약터널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 대전시에서 증약터널과 몇 가지 근대건축물에 대한 등록문화재 가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2010년 발견 이후 12년 만이니 많이 늦긴 했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지자체들은 근대문화유산들을 발굴해 보존과 활용하는 사업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근대역사와 함께 현재 어떤 근대문화유산들이 남아있는지, 남아 있는 대상들이 어떤 역사성과 특성을 보이는지 등 정확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하나의 근대문화유산이 발굴되고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누군가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과 예산 또한 수반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조사된 근대문화유산들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세밀하고 정확한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또 등록문화재 지정이 필요한 것과 문화재 지정은 아니어도 보존해야 할 대상들로 구분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전의 근대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이 훼손되어가고 하나둘씩 사라지는 이 시점에 좀 더 빠른 행정력을 동원해 가치 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관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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