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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전 YMCA 제33대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소감을 말씀해주실까요?
▲우선 대전YMCA 회원들과 이사님들께서 제게 대전YMCA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주시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이사님들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지혜와 힘을 발휘해 이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내겠습니다. 다만 우리 대전YMCA 역사가 그랬듯이 이사장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따라서 이사님들 지도와 회원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거든 따끔하게 바로잡아 주시고 좋은 길은 힘을 보태, 더 넓고 밝은 미래로 이어지는 길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YMCA가 뜻하는 사랑· 정의· 평화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고 양심에 따라 우리 대전YMCA를 변화와 도약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회관 신축 문제를 비롯해 재정적인 안정, 그리고 코로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청소년과 시민들과의 소통을 넓히는 문제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저와 우리 YMCA 실무일꾼들은 그 동안 쌓아온 경험과 열정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새로운 결실도 맺어 갈 것입니다. 덧붙여서 그동안 긴 시간 동안 우리 대전YMCA를 이끌어 주신 조광희 직전 이사장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김 이사장님은 언제부터 YMCA 활동을 시작하셨는지요.
▲대전YMCA 활동은 2017년부터 해오다가 2019년부터는 이사, 2021년에는 부이사장, 2022년에는 이사장 등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달려왔습니다. 2016년 대전에 자리 잡으면서부터 YMCA를 찾아 민주시민으로서 나름의 활동을 해 왔지만, 이렇게 이사장이란 자리에 이르니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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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민주화운동에 몸담으셨는데 어떤 계기로 민주화운동을 하시게 됐고, 20여 년간의 민주화운동 활동은 어떠셨는지요.
▲학생운동부터 시작하게 되었는데, 아시다시피 당시 군부독재의 시퍼런 억압통치 시절인지라 웬만하면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다만 저는 좀 독한 게 있는지 뭐든 철저히 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결국 오랫동안 그 길을 꾸준히 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하다가 친구를 별로 사귀지 못해 대학에서는 친구부터 사귀자고 서클을 찾았는데, 그 서클이 운동권의 삶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이라고 해도 삶 그 자체가 운동이었으므로, 특별한 것은 없지만 구속, 구금, 고문, 폭행, 고립 등으로 고통 받은 만큼, 민주 정부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제 인생 최고의 성공작이죠. 학생운동은 전국학생운동지도부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전개했기 때문에 수배 생활 속에 제 이름 석 자도 공개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어둠 속의 투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 운동은 물론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말 석방되고 몸담은 전국민족민주연합이라는 곳은 바로 대중 속에서 소위 재야단체 운동을 시작한 곳입니다. 이어 1991년 설립된 보다 광범위한 민중연대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서 2005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이 조직은 이 땅의 노동자, 농민, 교사, 청년 학생, 빈민 등 소외 받은 민중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대변한 민주주의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정파와 계층의 이해 대립과 충돌이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야단체의 활동 속에서도 제 후배인 고 박종철 열사의 뜻을 잇고,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박종철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지켜왔습니다. 2005년 일본 유학을 가게 되어 그만 두었지만 만약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시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공부의 신’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과 일본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까지 받으신 최고 엘리트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이 궁금합니다.
▲‘공부의 신’은 아니지만 공부가 가장 좋았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학생운동 시절에도 얼마나 책을 많이 읽고 깨알 같은 메모를 해왔는지 후배들이 질려버릴 정도였습니다. 공부는 내 삶의 친구입니다. 후배들에게도 배우지 않으면 실천도, 데모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사실 사회민주화운동이다, IT벤처기업이다 해서 공부할 시기를 많이 놓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못내 힘들었는지 결국 2005년 40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 8년 넘게 공부를 무엇보다도 우선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순천시 낙안읍성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실컷 놀았는데, 마침 집안이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공부하는 환경은 더 좋아졌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에는 공부를 꽤 많이 했는데, 1980년에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는 바람에 해 놓은 공부, 요즘 말로 선행학습이 많이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는 니이체, 사르트르 등 생철학자들에게 빠지기도 했고, 도스토예프스키나 김소월에게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공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책에서 읽은 것들로 친구들에게 잘난 척을 많이 했던 가 봅니다(하하하).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 읽지 않으면 약간 허전했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결국 공부가 친구처럼 내 옆에 항상 있었고 그것이 삶이었으니 입학시험도 합격해 대학교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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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법률, 특허정보 서비스 전문회사인 나라아이넷 주식회사를 설립하시고 법률정보 대중화에 앞장서셨는데 나라아이넷(주) 회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까요?
▲나라아이넷은 법률과 특허정보 전문 빅데이터 분석 및 정보서비스 회사입니다. 원래 1996년 창업 때에는 5만 여 쪽의 대한민국 현행법령집을 CD롬으로 담아 법령집 없는 전자시대를 열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습니다. 법령정보의 대중화, 민주화, 전자화를 내세우며, 국민들이 법령정보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법률서비스의 문턱까지 낮추기 위해 시도한 그야말로 벤처였습니다. 2000년 이후 IT 버블이 꺼지기 직전에 이를 사전에 감지하고 법률정보화에 상대적으로 뒤진 일본 법률정보 시장에 눈을 돌렸습니다. 2001년부터 일본 3대 법규출판사 중 하나인 신일본법규출판사와 제휴해 일본 내 최초로 「e-hoki.com(いい法規, 좋은 법규라는 뜻)」이란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회사의 일본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4차산업혁명시대로 AI, 빅데이터가 디지털경제의 동력이 되자, 회사는 다시 한번 특허와 법률정보의 산업데이터화를 통해 도약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1년이 회사 창립 25주년인데 그 때가 바로 디지털사회의 새로운 창업의 출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단법인 신규장각 이사장님과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객원 연구원 등을 맡고 계신데요. 각각의 하시는 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실까요?
▲사단법인 신규장각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서관을 표방하고 2004년 만든 법인이고, 저는 2016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식재산전략을 중심으로 한 2030년대 국가의 30대 정책 비전을 만들기 위한 연구와 유엔의 SDGs 교육과 실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4월에는 지식재산전문도서관을 만들어 신규장각의 목표를 실현해 ‘국민이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 속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우리나라 지식재산전략과 비전 정책 등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입니다. 총리와 민간위원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13개 부처 장관과 20여 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는 2020년부터 이 위원회 위원으로서 정부의 지식재산 전략과 기본계획 등 정책 등의 연구와 조언, 그리고 각종 지식재산 사업의 의결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2020년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일관계를 중심으로 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강연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 전공 분야가 북한과 일본 관계라서 북한 핵 문제와 북일간 관계 정상화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신냉전과 기술 블록화 등이 국제정치 주 이슈로 부상하면서 한일의 지식재산 외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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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휘 직전 이사장과 김찬훈 신임 이사장. |
▲코로나 이후 디지털 대전환이 급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전YMCA는 이러한 시대에 ‘인간중심의 디지털사회’를 지향하고 유엔의 ‘SDGs 17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시민들의 생활 정치 활성화와 민주 의식을 높이기 위한 활동으로, 환경, 평화, 소비자 운동 등에 대한 토론회와 포럼을 개최할 것입니다. 또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환경 감시와 하천정화 운동,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전YMCA는 청소년들과 시민들과 함께 시민들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인권 도시 대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특히 올해 개최되는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와 연계해 인권 포럼 등을 개최하는 등 인권교육을 활성화하고 생활 속 인권조례를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구즉동마을만들기 사업을 필두로 해서 대전시 여러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낙후시설, 환경오염시설 등을 정비하고 소통과 협력이 순환하는 공동체 만들기에도 힘쓰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YMCA 국제연대 활동이 주춤하고 있지만, 우리 지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인 SDGs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 베트남, 캄보디아 등 신남방국가들과 YMCA 사명에 따라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그동안 대전YMCA의 터전이었던 회관이 철거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회관 신축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이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미 부지가 마련된 구암동에 대전YMCA 회관을 임기 내 신축해 대전YMCA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습니다.
-청소년 사업 영역 확장과 지원을 늘려나가겠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까요?
▲‘시민이 강한 대전’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과 시민들의 사회 참여와 교양 증대를 위한 독서회와 연구회를 활성화하고, 사회참여 활동이나 학생 인권 확대를 위한 연대활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민주주의 의식을 고취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전YMCA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청소년 경제금융교육 봉사팀 폴라리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디지털대전환 시대에 AI, 로봇, ICT, 지식재산 분야에서의 새로운 교육을 통해 디지털사회의 전문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열어 갈 것입니다. 특히 장학사업 예산을 더욱 늘려 꿈이룸장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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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이란 일종의 자원배분 능력이라고 봅니다. 어느 조직이든 그것이 크든 적든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있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 조직 내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에 맞게 배분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라고 봅니다. 그 중 핵심은 인적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고 또 인적 자원들 간의 소통과 현장에서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리더십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간의 소통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이 없이는 가치의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 신뢰가 없으면 그 사회와 조직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과거부터 '인화'를 많이 이야기 해왔는데, 그것은 바로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소통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그 사회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구성원들 간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취미와 특기는 오랫동안 해온 등산과 축구입니다. 등산은 학생운동 때부터 일종의 단합과 트레이닝 차원에서 전국 유명한 산을 자주 다녔고, IMF 때는 위기 돌파를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더욱 자주 다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사 근처에 있던 서울의 청계산만 250번은 넘게 다녀온 것 같습니다.
신앙에 대해서는 항상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죽어야 다시 산다는 각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을 따라 배우고 깨우쳐 나가는데 그 중심은 역시 이 나라 민중들의 삶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지닌 모든 지적 능력의 범위 내에서 양심에 따라, 청소년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이사장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의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과 사회민주화운동은 물론 벤처사업 경영자로의 변화, 나아가 일본 문제 전문 연구가로서 활동 등 자신과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여 왔던 삶 자체가 큰 보람이자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3가지 방면의 삶 모두 일정한 결실을 거두었으니 더더욱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고문과 구속, 고립과 폭력 등으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면서 만들고자 했던 민주주의 나라가 1987년 민주대항쟁을 거쳐 국민들 앞에 우뚝 설 수 있었으니, 최고의 성과이고 보람이지요.
또 아주 크지는 않지만 민주화된 세상에서 급속히 찾아온 IT 혁명 시대에 벤처기업을 창업해 대한민국 경제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 몸을 바쳤던 것도 기쁨의 하나입니다. 정치나 통일도 좋지만, 우리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것이 맨 먼저였습니다.
결국 이 땅의 짓밟힌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고, 민주화된 세상에서는 이 나라 경제를 떠받든 기업의 경영자로, 노동자로 헌신했고, 내 부모님의 자식으로, 또 내 아들 딸의 부모로서 살고 있는 1980년대 전환기의 평범한 영웅으로서의 삶이 저에게 최고의 선물이고, 행복이고, 기쁨이었습니다.
- 이사장님,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대해 들려주시겠는지요.
▲대전YMCA이사장으로서 대전시 청소년과 시민들 속에서 시민들 복지, 문화, 나라의 평화, 통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식재산전문도서관을 만들어 4월 말 경 오픈할 것입니다. 4차산업혁명에서 특허, 저작권 등 지식재산은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지렛대이자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따라서 이 도서관을 기본으로 지식재산가치를 확산하는 문화 운동을 이끌어 가고 국가의 낡은 지식재산 생태계도 혁신해 나가는 일에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1990년대 말 IT 혁명이 다가왔을 때 벤처기업을 창업했듯이 우리 국민과 기업들의 지식 재산 가치를 자산화해 국가의 부를 키우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 후의 삶은 한반도 통일과 한일관계 전문 연구가로서의 삶에만 집중해 책과 조사 연구로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사장님은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나시고 초, 중, 고는 어디를 다니셨고, 그동안의 경력과 프로필은 어찌 되시는지요.
▲저는 1965년 8월에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서 낙안국민학교를 마친 후 중고등학교는 부산에서 각각 건국중학교, 부산남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83년부터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다니고 학생운동으로 2번의 구속을 거쳐 1987년 석방된 후 졸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운동 이후 1989년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편집부장으로 ‘전민련신문’을 편집했습니다. 그 후 재야 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으로 통합되면서 정책위원회에서 ‘연대와 전진’이라는 기관지 편집부장과 부대변인을 했습니다. 전국연합 활동은 1995년 그만두고 서울시 강동구청장 비서로 옮겨 지방행정의 여러 면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1996년에 현재의 나라아이넷㈜ (당시 우리나라법령정보통신㈜)을 창업해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는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열사를 추모하고 노동자와 국민들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일했습니다.
2005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구를 위해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 유학을 단행했고, 북일관계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면서 2014년에 국제정치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학 도중인 2006년 일본에 나라아이앤씨㈜를 설립해 일본 법률정보화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유학생활이었습니다. 2013년 귀국 후 나라아이넷 회사 경영에 집중했고,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가지식재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지식재산 관련 변호사, 변리사, 기업대표, 교수 등과 대한민국 지식재산 전략과 정책 등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6년부터 일본 국립대학인 일본정책연구대학원대학에서 그 대학 총장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와 함께 ‘세계와 일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2020년부터 북일관계와 북한 핵문제, 한일간 지식재재산외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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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창간 71주년을 맞은 중도일보의 독자님들께 꼭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중도일보의 창간 71주년, 너무나 멋집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우리 대전 충남 시민들과 함께 해온 중도일보의 헌신과 노력에 심심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중도일보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보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언론으로서 시민들 속에서 알 권리를 넓혀가고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비판적 역할을 다하는 참언론으로 번창하기를 기대합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국장)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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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가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법률, 특허정보 서비스 전문회사(현 나라아이넷(주))를 설립해 법률정보 대중화에 앞장섰고, 현재 사단법인 신규장각 이사장,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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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