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1-특별인터뷰] "대전·충청만의 수용성, 다른 곳에 없는 물길이 바로 킬러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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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1-특별인터뷰] "대전·충청만의 수용성, 다른 곳에 없는 물길이 바로 킬러콘텐츠"

안장원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장 플레이스 마케팅 대가
경험을 소유하는 시대 트렌드 읽고 문화코드 적용해야
4년마다 교체하는 슬로건 잘쌓은 콘텐츠 무너뜨리는 일
'디자인 대전' 콘텐츠에 디자인 입혀 자체문화 만들어야

  • 승인 2022-08-31 16:16
  • 수정 2022-08-31 16:19
  • 신문게재 2022-09-01 8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20220808-안장원 회장2
사진=이성희 기자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 뉴욕의 ‘베슬’, 아랍에미리트 사디야트섬의 ‘루브르 아부다비’는 세계인이 찾는 국제적인 명소다. 문화를 접목하니 공간이 달라졌고 나아가 도시 변화로 이어지는 확장성을 확인한 비교적 최신판 '플레이스 마케팅'(Place Marketing)의 예다.

그렇다면 "왜 대전과 충청에는 세계인이 알아서 찾아오는 명소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대전과 충청은 산과 바다, 강 그리고 한반도 중심이라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도 무엇하나 특별함이 없는 그저 그런 곳으로 통한다. 오랫동안 도시의 변화를 꾀했음에도 과감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은 정책은 번번이 실패했다. 재밌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한마디로 머물고 싶은 도시로는 매력이 약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KODIA) 회장인 안장원 (주)이음파트너스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문화와 역사성 코드의 맥을 짚지 못하는 행정력,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일회성 기획, 자가발전 형태로 증식되지 못하는 콘텐츠 부재라는 진단을 받았다.

참고로 충남 공주 출생인 안 회장은 2017 대한민국디자인대상 디자인공로 산업포장수훈, 2019 아시아 최초 SEGD Sylvia Harris Award, 미국공간경험디자인협회(SEGD) 글로벌디자인어워드 2015~2020년 10회 연속 수상, 2019 우수디자인(GD) 어워드 3관왕 등 화려한 수상 경력과 대한민국 굿 디자인 환경디자인 부문과 잇어워드 환경디자인 부문 최다 수상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경험을 공유하는 시대, 우리는 따라가고 있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명소는 머무르기 위한 '곳'에 있다. 거점과 거점을 연결해 오게 하고 기억되는 경험으로 다시 찾는 화제의 장소가 될 때 비로소 머무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과 경험인데, 한 컷의 사진으로 공간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플레이스 브랜딩(Place Branding)의 출발점이다.

"대전과 충청도는 거점-거점-거점을 연결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 명소가 따로 노는 형국이다. 대전을 예로 보자. 신세계 아트&사이언스-대전컨벤션센터(DCC)-한빛탑-한밭수목원-갑천은 각각 경험해야 할 요소가 많아서 한 번만 방문하기는 아쉬운 곳이다. 아쉬워서 또 오고 싶은 곳을 그룹핑(Grouping)하고 콘텐츠로 엮는 과정이 있어야만 계속 찾고 싶은 명소가 된다. 좋은 콘텐츠는 소비자가 알아서 경험을 기록해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확산하는데, 이 과정이 무한 증식해야만 장소는 명소가 된다."

왜 그곳에 가려 하고 그곳에 가면 행복해하는가, 그리고 기억해서 다시 찾아가려 하는가는 결국 공간이 가진 매력, 콘텐츠의 힘에 있다는 게 안장원 회장의 설명이다.

안장원 회장이 기획단계부터 참여한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공간과 주변의 역사적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다. DDP 부지는 고교 야구의 성지였고 더 먼 과거에는 성벽 안쪽에 자리했던 도성이었다. 그리고 청계천, 백정(白丁) 거리, 궁중 문화거리 등 무언가를 만들어 도성으로 공급하던 역사적 콘텐츠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맥락이 이어진다. 그렇게 DDP는 문화공간으로의 플레이스 마케팅이 이뤄졌고 세계적인 명품이 앞다퉈 브랜드 런칭을 위해 줄을 서는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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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성희 기자
# 도시 심폐소생, 문화코드가 핵심이다.

스페인 빌바오는 1970~80년대 철강과 조선산업의 중심이었으나 침체기를 겪던 도시였다. 철강산업지구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오면서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가 된 대표적인 도시재생의 교과서다.

"스페인에 콘텐츠가 없었을까. 아니다. 단지 경영 노하우가 없었을 뿐이다. 구겐하임이 들어와 미술관을 지으면서 공간이 개발됐고 유럽 특유의 방사형 구조를 따라 수 천 년 이어져 온 바스크 지역의 문화적 토대가 있는 구도심으로 문화 코드가 흐르면서 곳곳에서 도시문화 콘텐츠가 발굴됐다. 구겐하임을 매개로 빌바오 도시재생은 문화 주도형으로 역사와 문화, 관광, 생활이 상호작용으로 도시 전체가 갤러리가 됐으니 세계인이 알아서 찾아올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나 두바이처럼 역사성 기반이 없어도 문화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카타르는 진주를 캐던 유목민에서 ‘오일머니’로 세계적인 작가들을 영입해 역사성을 뛰어넘을 문화콘텐츠를 쌓았고,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는 기존 금융 중심에서 문화와 예술, 삶, 복지 등으로 사고를 전환해 도시휴양의 대표 도시로 떠올랐다. 안 회장은 "결국은 문화"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화란 세대나 성별 그리고 시대에 흐름에서 호불호가 나뉘지 않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과 기록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 과감한 도전, 지속성이 관건이야.

우리나라의 역사적 문화코드는 한국전쟁 그리고 70년대 산업화, 80년대 아파트 건설로 인해 지워졌다. 남루했으나 특색있던 골목, 집마다 개성과 삶이 녹아 있던 주택 그리고 이면도로까지 모든 건축이 사라졌다. 그래서 전국은 다 똑같은 획일적인 도시로 변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경주는 잘 보존돼 있다.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니까 강력한 규제를 했던 덕분이다. 그렇게 30년 이상 쌓인 문화적·역사적 콘텐츠가 경주를 상징하는 자원이 됐다. 그 외 도시는 다양성이 사라졌고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어 문화 전문가들과 함께한다면 앞서갈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가 분석한 문화수도 서울의 정체성 위기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강박적인 생각과 조급함으로 인해 서구 사회를 무분별하게 모방한 것", "참을성 부족, 객관성 결여, 굉장히 지루한 전략, 홍보에 대한 순진한 믿음, 빨리 가려고 하는 선택"이라고 했다. 안 회장은 이는 비단 서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시·도, 지자체가 4~5년 주기로 권력이 교체되면서 함께 바뀌는 브랜드의 일회성에 있다고 했다.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은 몇백 년을 짓고 있다는 것이 바로 콘텐츠이자 브랜드다. 브랜드는 지름길이 없다. 콘텐츠가 쌓이지 않는 이유가 우리가 가진 대표적인 문제다. 세계적으로 플레이스 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곳이 미국 뉴욕이다. '아이 러브 뉴욕'은 70년대에 만들어졌다. ‘아이 러브 뉴욕’은 오픈소스로 뿌려졌고 자가발전형태로 디자이너와 민간인들이 사용한다. 0.54초마다 관련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는 지속성이 성공한 사례다.”

“빌바오나 싱가포르, 뉴욕, 아부다비도 문화코드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리고 강력한 행정과 과감한 투자로 도전해 성공한 사례다. 다만 플레이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의 혁신적인 생각이다. 민간에 역할을 맡겼다면 지원해 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사사건건 개입하거나 예산 타령을 하면 결국 공무원 마인드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책임과 권한은 민간 또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행정은 묵묵히 전폭적으로 힘을 보태면 도시 변화는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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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성희 기자
# 쇼핑충청, 길을 찾아라.

과거의 랜드마크는 높이나 규모에서 외관을 강조한 상징성에 주력했다면 현재의 랜드마크는 교감하고 사랑과 자부심으로 융합된 콘텐츠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안 회장이 핵심이라 말하는 플레이스 마케팅과 플레이스 브랜딩의 핵심 가치기도 하다.

"충청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삼국이 맞닿은 경계로, 지금까지도 문화적 수용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또 우리나라가 가진 기질은 융합력인데, 바로 이런 기질이 대전과 충청의 기질과 일맥상통한다. 콘텐츠가 모이고 문화적 감성 디자인과 경험 가치가 뒤섞여 대전·충청만의 것으로 버무린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안 회장은 '쇼핑충청' 킬러콘텐츠로 '디자인 대전'(Design Daejeon)과 '물'을 제안했다. 디자인 대전은 물건도 사람도, 공간도 행정도 모두 디자인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스마트하고 아름답고, 정돈돼 있고, 미래지향적이라는 콘텐츠에 디자인을 입힐 때 명확한 대전과 충청만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충청의 상징성에서 물은 늘 제외돼왔다. 빌바오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모두 물이 가까이 있다. 그렇기에 충주호와 대청호 그리고 충청을 돌아 서해로 이어지는 금강 등 물길은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충청 물길에 깃발만 꽂아도 그 자체가 설치미술이고, 주변을 걷기만 해도 둘레길이 된다. 어떻게 주제를 잡고 가느냐가 관건이지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안 회장은 “플레이스 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상징성, 떠오르는 연상성,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 도시의 이미지와 관통하는 랜드마크 그리고 이 전체를 보는 통일된 시각과 강한 행정이 있다면 무색무취라 불리는 충청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들과 똑같으면 성공할 수 없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물길, 이것만 잘 살린다면 모든 근현대 문화코드는 대전과 충청으로 모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윤희진 정치행정부(부국장)·정리=이해미 기자·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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