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지나가는 이야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지나가는 이야기

최대원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 승인 2023-03-22 08:51
  • 수정 2023-03-22 14:04
  • 신문게재 2023-03-23 19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30322140043
최대원 본부장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공연장의 A 감독이 전화를 걸어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본부장님, 정말로 ○○은행에서 제게 직접 전화가 와 해결됐어요"라며 너무 감사하다고 연신 고마워했다.

사연인즉, 우연한 기회에 무대 팀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A 감독이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약간의 은행대출이 필요한데 최근 은행 금리가 매우 높아지고 대출도 쉽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그것을 알아봐 달라고 심각하게 부탁한 게 아니라 지나가는 이야기였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이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지 않고 며칠 후 우리 재단의 주거래은행에 연락해 그 친구의 어려움을 들어보고 해결해줄 수 있으면 처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은행의 대출담당자가 직접 우리 감독에게 전화해 상황을 파악하고 방법을 알려준 듯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왕에 도와준 거 잘 처리되었다니 좋은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공연에서도 지나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대전예당에서 근무할 때 고양시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테너 호세쿠라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형님의 "대전에서도 이런 공연을 보고 싶다"는 지나가는 말에 바로 다음 해에 대전 초청공연을 성사시킨 일도 있었다. 연주자들끼리 '우리 언제 같은 팀을 만들어서 연주해봐요.'라고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던 말이 실지로 같은 팀이 되어 연주활동을 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필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분장실까지 어렵게 찾아가서 마에스트로에게 언젠가 대전에서의 공연을 초청하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때 무티는 영혼 없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스페리암(기대해 봅시다)'라고 대답했었는데, 한참을 지났지만 정말로 빈 필하모닉과 함께 대전을 찾아와서 연주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아무리 지나가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나오면 힘을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지나가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그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예로는 "우리 조만간 밥 한번 먹자","언제 차 한잔 같이하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들이 꼭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지나가는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나중에 같이 식사하자는 이야기는 정말로 약속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최근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임시완은 지나가는 이야기라도 그런 식사 약속은 적어놓고 꼭 지키고, 언제 보자는 얘기에 정말 집에 찾아가서 상대방이 오히려 부담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또는 내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스쳐 지나가면 어떻게 하지, 내가 정말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거나, 누군가가 절실한 결핍으로 도와달라고 하고 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자 큰 상처가 될 것이다.

대화에 있어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그 의도를 이해하고 제대로 대응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법에 '경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청(傾聽)의 의미는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의 동기와 정서에 귀 기울이며 이해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경청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를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에 대한 이해와 그 내면의 의미를 알고 대응해 준다면, 요즘처럼 불통의 시대는 많이 개선될 것이다. 그것이 용서든 화해든 협력이든 말이다. 경청이야말로 경계를 잇는 소통이며, 발전을 이룰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오늘은 전에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한 사람한테 연락해서 그날이 오늘인데 시간이 가능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최대원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응원하다 쓰러져도 행복합니다. 한화가 반드시 한국시리즈 가야 하는 이유
  4.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5. "행정당국 절차 위법" vs "품질, 안전 이상없어"
  1.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2. 김태흠 충남도지사, 일본 오사카서 충남 세일즈 활동
  3.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 여성 장애인들 대상 가을 나들이
  4.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5. "대전 컨택센터 상담사님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헤드라인 뉴스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정치권 일각에서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 논란을 제기한 가운데 23일 현장에서 열린 정부 안전점검에서도 서로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안전 논란을 처음 들고 나온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은 행정당국의 법정 절차 위반을 대전시는 자재의 품질과 교량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 각각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에 따르면 이날 점검은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건설기술연구원, 대전시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회의 이후 장 의원은 대전시가 중고 복공판을 사용하면서 법정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충남도의 명산과 습지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청양 칠갑산을 비롯해 예산 덕산, 공주 계룡산, 논산 대둔산, 금산 천내습지까지 각 지역은 저마다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간직하며 도민과 관광객에게 쉼과 배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가을빛으로 물든 충남의 생태명소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청양 칠갑산= 해발 561m 높이의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 가을 단풍은 백미로 손꼽는다...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