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과학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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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과학하는 사람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 승인 2024-01-30 10:13
  • 신문게재 2024-01-3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현 연구원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1998년, ETRI에 면접을 보던 중 한 면접위원이 질문을 했다. "플랑크상수가 1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플랑크상수는 우주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상수 중 하나로 6.6x10-34 m2kg/s 정도 된다. 이 값이 1이 된다는 것은 10의 34승 배가 커진다는 것이다. '1'에 '0'이 34개나 붙는다. 이 값은 전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보다 더 많다. 참고로 전 우주의 별의 수는 약 7x1022개 정도 된다.

사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자원도 부족하고 생산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자본투자도 무제한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과학기술혁신 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필자가 근무하는 곳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출연연이다. (주로) 나라에서 세금으로 시행하는 연구개발사업을 수주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에 기술이전함으로써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TRI에는 2000여 명의 연구원이 모여 저마다의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이 수행한 연구의 결과는 결과보고서와 시제품을 통해 또 다른 연구자들(교수님들을 포함하여)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또한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하고, 연구자들을 모으며, 확보한 기술들을 논문으로, 특허로, 기술문서로, 또는 노하우로 만들어간다. 이런 일들을 입사부터 퇴직까지 30여 년간 반복·지속하게 된다.

올해 R&D 예산이 삭감됐다. 충격적이다. 나눠먹기, 갈라먹기, 카르텔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솔직히 무엇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줄이지 않았던 R&D 예산이었다. R&D 예산이 '씨나락'이라는 것에 동의한 탓일 것이다. 씨나락은 내년도 농사를 짓기 위한 씨(종자)+나락(볍씨)을 말한다. 배고프다고 이 씨나락을 먹어버린다면 내년도 농사를 짓지 못하고 결국 파국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적은 양의 씨나락은 농사라는 행위를 통해 나라를 배불릴 수 있는 양식이 되니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배가 고파 씨나락을 꺼내 밥 지어 먹고, 나중에 누가 먹었냐는 추궁에 모두 오리발을 내미니, '그럼 귀신이 까먹었다는 소리냐'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학기술은 쌓아가는 것이다. '기술의 축적'이라 부른다. 장비도 인력도 노하우도 모두 축적된다. 기술의 축적은 많은 질문이 만들어지고 또 그 답들을 찾아가는 길고 어려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기술의 축적이 컴퓨터가 저 혼자 생각하게 만들고, 우주선이 우주 밖으로 날게 하고, 무인자동차가 스스로 가게 한다. 이 '기술의 축적'은 쌓는 데는 많은 정성과 시간과 예산이 들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한순간이다. 올해 예산 삭감으로 흩어진 연구원들은 내년에 다시 예산을 지원하다고 바로 모일 수가 없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인건비를 확보하기 위해 참여한 다른 과제에서 바로 떠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비도 마찬가지다. 사용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실험실에서 빼냈거나 다른 연구자에게 이관한 장비는 다시 예산을 받는다고 바로 연구에 투입하기 어렵다. 연구에 필요한 이런 요소들은 시합에 투입될 준비가 된 채로 벤치에 앉은 축구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흩어진 이런 요인들을 다시 모으는데 몇 배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첨단기술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얼마나 더 약세를 겪을 것인지, 첨단기술을 토대로 겨루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얼마나 더뎌질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씨나락을 까먹은 탓이다.

1998년 입사 면접에서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겠지요." 심사위원이 다시 물었다. "왜요?" 나는 다시 대답했다. "문을 다 닫아도 갑자기 쑥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 둘은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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