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잘 알다시피,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300명 의원 정수를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을 병행해 선출하는 혼합형 제도로서, 지역구 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1인을 단순다수 방식으로 선출하고 비례대표 의원은 준연동형 방식으로 선출한다. 참고로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의원 전원을 단순다수 또는 절대다수 방식(프랑스의 경우)으로 선출한다. 반면에 독일과 일본은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되, 비례대표 의원을 권역별로 선출한다.
이처럼 국가마다 선거제도가 다양한 것은 정치문화의 특성과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최상의 선거제도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비례대표제가 가장 바람직한 선거제도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비례대표제는 1899년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종교적·언어적 사회균열을 다당체제의 통합적 메커니즘으로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채택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나중에 유권자의 사표(死票)방지 심리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 많은 나라에서 채택했던 것이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제3공화국에서 정당정치의 발전, 소수정당의 존립, 사회집단의 대표성 제고 등의 취지로 부분적으로 채택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의 도입 취지가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의원 배분이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의원 규모를 보면, 독일은 630명 의원 정수 중 331명(52.5%)이고, 일본은 465명 의원 정수 중 176명(37.8%)인데 반해, 한국은 15.6%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동안 비례대표 의원 배분이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데 대한 제도적 성찰로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설계 잘못으로 이른바 '위성정당'들이 난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섣불리 재단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도 지난 총선처럼 거대 양당에 유리한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비례대표제의 한계와 문제점은 앞으로 새롭게 구성될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주어진 제도 하에서라도 정당들이 또 다른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그것을 피하는 길은 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할 시 지역별 균등배분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47명 비례대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17명,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19명, 정의당 5명, 국민의당 3명, 열린민주당 3명 등으로 배분되었다. 이중 수도권 소재(서울시, 인천시, 경기도)의 의원이 38명으로 80.8%에 달했고, 비수도권 소재의 의원이 9명(교수 4명, 국회의원 출신 2명, 지방의원 출신 2명, 의료직능인 1명)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비례대표제가 인구비례에 따른 권역별 배분 방식을 채택했더라면, 전체 인구 중 각각 50.5%인 수도권 24명, 11.8%인 충청권 5명, 9.7%인 호남권 4명, 24.6%인 영남권 11명 등으로 배분되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권역별 배분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연유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후보를 추천할 때 여성에게 절반 이상을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역 균등배분에 관한 규정은 없다. 설사 이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정당이 국가통합과 사회통합을 지향한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균등배분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수도권의 지역 유권자들은 각 정당의 지역별 균등배분 현황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제에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 사안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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