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갈 일, 볼 일, 쓸 일 다음"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갈 일, 볼 일, 쓸 일 다음"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승인 2024-12-23 10:39
  • 신문게재 2024-12-24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조훈성 연극평론가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미루어진 글, 이제 풍경소리 마지막 회차 게재일을 확인한다. 본래는 한강의 노벨상 시상식 소식도 전해야 했고, 비상계엄 및 탄핵정국에 대한 열기도 새기려고도 했다. 참 우연찮게도 그 문학 안의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의 트라우마의 바탕이 어쩌면 내 눈앞에서 실제로 다시 벌어질 뻔 했었다. 나는 그 비상계엄의 밤을 꼬박 새웠으며, 분노하였고 거리에 나왔었다. 물론 이 세계는 여전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또 다른 거리의 겨울 광장에서 그 괴물들을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우국의 기도회를 열고 있는 것도 보았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육하원칙을 끌어대 우리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그 원흉을 찾아내고 싶다. 하타사와 세이고 원작의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최근 다시 공연되고 있다. 기존의 '학교 폭력' 관련한 작품들이 당사자인 가해자, 피해자 청소년의 시선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 작품은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고 그 부모들의 대화를 통해 그 폭력을 직면하게 하고 폐쇄된 상담실 공간에서 냉정한 시선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자녀가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추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단지 '학교폭력'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본다면 오늘의 이 답답한 탄핵정국에 윤리의식이 마비된 채, 어떻게든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덮어보고자 하는 시도들을 날선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 지금의 열기를 만드는 게 그 평범한 악의 얼굴들이 이편에 건네는 말이 기껏해야 자신들은 도정된 역사에 휘말렸다는 식의 항변이다.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진 일이라는 그 반복적 수사는 우리 가슴 아픈 현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노벨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에서 뿐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수많은 연극의 무대는 바로 이 거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과 그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태반이다. 악한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위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만행을 저질러왔다. 그럼에도 또 이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 입은 희생자 앞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결코 하지 않는 것도 일반적이다. '치유'라는 게 트라우마 당사자 스스로 그 깊숙한 상처를 드러내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것을 되새기는 일은 그래서 고통스럽고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전남 무안에서 '손톤 와일더' 원작의 연극 <우리읍내>(손재오 연출/무안승달문화예술회관/11.28)에 대해 쓰고 있는데, "이곳저곳이 '우리읍내'다."라는 마침표를 미리 찍어둔다. 전남 무안사람들의 한 세대의 삶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 하루하루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연극의 끄트머리 '무대감독'의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라는 대사 한 구절이 뜬금없이 서럽고 뜨겁다. 평범한 일상의 가치는 그 하나하나의 열렬한 삶을 평범하게 보이게 하는 우리들 스스로의 얼굴에 있지 않은가 싶다. 그 찬란한 오늘, 내일이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은 또 우리들 스스로의 권리이고 의무가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나는 이 겨울, 딱딱한 신발에 다시 발을 구겨 넣고, 찬바람 부는 거리를 찾는다. 그 거리 다시 서서보니 수많은 성냥개비들의 불씨가 묶여 형형색색 다른 불기운들이 큰 파도로 일렁이는데, 추울까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의 바람도 오래간만에 맞고 왔는데, 극단 일터의 <산사람들>(류현희 작·연출/일터소극장)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예전 그이들이야말로 이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몇 층의 철골 비계에 올라 머리띠를 묶으며 어마어마한 단결의 함성을 만들어냈던 주역들이었는데, 오늘의 연극은 말 그대로 '산사람들', 이른 새벽의 한 야트막한 터에서 함께 운동하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연극이 거대한 역사 서사와 존재 철학의 질문에 숨차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이 연극의 목소리, 함께 운동하며 작은 캐리어에 넣어둔 그 누군가의 생활 하나하나까지도 언제나 꺼내볼 수 있는 소박한 삶의 고민과 생활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담히 전해진다. 함께 공유하는 작은 땅의 이야기 속에 어쩌면 우리는 그 잃어버린 '곁', 그 시시콜콜한 생활 주변을 공유했던 시절을 다시 갖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갈 일', '볼 일', '쓸 일' 다음에 나는_ 그 열렬한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야만 한다. 내일을 또 걱정하면서.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진시 파견 충남 공무원, 농가보조금 약 12억 원 횡령…충남도, "엄정 조치할 것"
  2. 서산 사과농업 '스마트 전환' 본격화, 48억 투입해 미래형 과수원 만든다
  3. 대전시 감사위 ‘트램 개통 지연’ 감사 착수
  4. 음성군, '2026 음성청결고추 직거래장터' 12일 개장
  5. 반복되는 대전 산업현장 추락사...현장 안전관리 '경고등'
  1. 대전중수청 이전 이제부터가 관건… 내년 ‘신청사 예산’ 확보해야
  2. 교실 밖에서도 수능시계는 간다… 마지막 선택형 수능 D-100
  3.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 "수도권 충당 위한 충남 내 송전탑 추가 건설, 결사반대"
  4. KAIST 배충식 신임총장 "과학기술 심장에서 국가 균형 성장의 핵심 역할"
  5. 생명공학연구원, 질병저항성 유전자변형 고교생 토론대회 성료

헤드라인 뉴스


[기획]"지역 무대 서는 건 꿈도 못꿔" 원정공연 떠나는 예술 꿈나무들

[기획]"지역 무대 서는 건 꿈도 못꿔" 원정공연 떠나는 예술 꿈나무들

'문화예술 도시 세종'을 향한 청사진은 화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역 예술 꿈나무들은 설 무대를 찾지 못해 인근 타 도시로 향하고, 시민들은 문화공연을 즐길 시설이 부족해 문화 향유에 목말라 있다. 여기에 재정난으로 주요 문화시설 건립까지 지연되면서, 세종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도시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은 언제쯤 행정수도를 넘어 시민 누구나 문화를 누리고 예술가가 지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까. 세종 문화예술 인프라의 현주소와 과제를 3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

대전시 3칸 굴절버스 도입 백지화…"업체 계약해지"
대전시 3칸 굴절버스 도입 백지화…"업체 계약해지"

대전시가 11일 민선 8기 시절 신교통수단으로 검토됐으나 수입대행사 납품 문제에 발목 잡힌 3칸 굴절버스 도입을 백지화 했다. 허태정 시장이 이날 시청에서 주재한 확대간부회의에서 업체 계약 해지를 절차를 밟기로 최종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결정한 이유는 시범사업을 위해 업체에 선급금 72억이 지급 됐지만, 계약한 3대 중 2대가 기한 내 납품이 이뤄지지 못한 데다 1대 역시 차량 소유권 이전 문제에 운행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허 시장은 "계약 해지와 예산 손실 규모, 책임 소재를 명확히 따져 철저한 후속대책을 마련하라"..

이재명 정부, 정부세종청사 중심 `국정 운영` 연착륙 안되나
이재명 정부, 정부세종청사 중심 '국정 운영' 연착륙 안되나

어린 아이부터 성인 그리고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인사들까지 모두가 인서울(In-Seoul)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권 공화국의 철옹성은 이재명 정부 들어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을 것인가. 빛바랜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 지방분권 가치가 새 정부의 국가균형성장 모토 아래 새로이 발현될 수 있을까. 2029년 8월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공과 청와대를 벗어난 집무 약속이 드라마틱한 반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지 주목된다. 그간의 과정과 흐름, 대통령 발언들을 놓고 보면, 새로운 시대의 도래란 희망을 갖게 한다. 이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폭염에 농작물도 피해 폭염에 농작물도 피해

  • 중장년 재취업을 향한 열기 중장년 재취업을 향한 열기

  • ‘에어컨 파워냉방으로 틀었음’ ‘에어컨 파워냉방으로 틀었음’

  • 광복절 앞 태극기 나눔 광복절 앞 태극기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