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된장찌개 잘 끓이는 완벽한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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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된장찌개 잘 끓이는 완벽한 비서

  • 승인 2025-02-12 17:30
  • 신문게재 2025-02-13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된장
지난 휴일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사곰사곰 익은 김장김찌와 맛있게 먹었다.
"집밥 해드리고 싶어요." 헤드헌터 회사 대표 강지윤에게 비서 유은호가 건넨 말 한마디. 유은호는 싱글대디다. 일이면 일, 육아면 육아, 그리고 비주얼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직장 여직원들은 물론 동네 젊은 엄마들은 멀리서 딸과 함께 걸어오는 유은호의 모습을 보면 동공이 커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심지어 실버카를 밀고 가는 할머니도 뒤돌아서 쳐다보는, 이슬을 머금은 촉촉한 땅에서 쑥 뽑은 무처럼 미끈한, 잘생긴 남자. 하지만 깐깐하고 차가운 강지윤 대표는 만만치 않다. 커피는 회사 앞 세 번째 골목 네 번째 카페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여야 하고 스테이플러 찍는 각도도 정확해야 한다. 허나 누구나 허점은 있는 법. 일은 최고지만 정리는 최악인 강지윤. 정리정돈의 달인 유은호와는 운명의 만남인 듯. 세심하고 부드럽게 챙겨주는 완벽한 비서 유은호에게 얼음공주 강지윤도 어느 결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대표님, 된장찌개 좋아하세요?" 어쩌다 은호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된 지윤. 불고기, 잡채, 애호박전, 계란말이, 두부부침… 그리고 된장찌개. 헉, 요리까지. 된장찌개를 한 술 떠먹은 지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호를 쳐다본다. 은호의 집밥과 따뜻한 마음에 지윤은 마음이 녹는다. 과거의 상처로 혼자인 게 익숙하고 외로움은 사치라고 생각한 지윤은 온기를 그리워한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뻔한 로맨스다. 하지만 '범죄도시3'의 악랄한 빌런 주성철은 온데간데없고 달달구리한 유은호로 변신한 이준혁이 여성들의 연애세포를 깨운다. 거기다 된장찌개가 일품인 집밥의 고수라니.

"얘들아, 밥먹자." 영화 '고령화가족'의 된장찌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 집의 3남매는 하나같이 찌질하다. 엄마 집에 빌붙어 사는 백수 큰아들과 대학까지 나와 영화감독이 됐지만 데뷔작이 쫄딱 망해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온 둘째 아들. 그리고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중학생 딸을 데리고 역시 엄마 집에 얹혀사는 딸. 앞날이 깜깜한 집구석이다. 얼굴만 맞대면 서로 으르렁거리고 여차하면 드잡이까지 하는 구제불능 3남매. 하지만 저녁밥 먹는 순간만큼은 화기애애하다. 엄마는 이런 자식들을 묵묵히 받아주고 부지런히 먹인다. 밥상에 둘러앉아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볼이 미어터져라 먹으면서 숟가락을 부딪치며 된장찌개를 푹푹 떠먹는 애물단지들은 한 '식구'가 된다. 이 영화의 끝내주는 덤 하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나오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OST. 패티 김의 '초우'를 리메이크했다. 패티 김이 들으면 발끈하겠지만 쏘세지클럽에 한 표. 하마터면 울 뻔 했다.

"그 집 된장찌개가 생각나요." 금요장터엔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을 갖고 와 판다. 찌개를 끓이면 옛날 엄마가 해준 맛이 난다. 된장은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원초적 본능과 같은 문화원형이랄까.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간혹 배탈이 나면 된장을 연하게 풀어 파를 송송 썰어넣고 끓여 마신다. 그러면 한결 속이 편해진다. 대전에서 살다 지금은 타지에 있는 후배가 얼마전 전화통화에서 용두시장 '샘골' 식당 얘기를 했다. 이 집 된장찌개가 그립다고. 바지락과 두부, 부추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 직접 담근 된장을 쓴다고 주인 아주머니가 자랑하곤 했다. 용두시장 재개발로 아쉽게도 2022년 봄 폐업했다. 한동안 된장찌개 잘 끓이는 유은호앓이를 할 것 같다. 참, 윤석열이 요리는 잘한다고? 급조된 '국힘 용병'으로 걸맞지 않은 왕관을 쓰는 바람에 전두환과 동격이 됐다. 윤씨 아저씨가 김치찌개 끓여주는 푸근한 동네 밥집을 상상해 본다. 검사 그만두면 식당하라는 아버지의 금쪽같은 조언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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