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시민의회를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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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시민의회를 상상하자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 승인 2026-05-03 13:02
  • 신문게재 2026-05-04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권인호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노동자부터 주부까지, 청소년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색깔의 시민들이 모여 의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과연 그것은 장밋빛 상상에 불과할까.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6일 뒤 열린 제38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나라, 진정한 국민주권 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자"며 "서로 다른 의견과 가치가 존중받고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더욱 건강하고 튼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천명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 속 민주주의는 멀게만 느껴진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지방의회 무용론', 국회의원 정수 축소 주장, 싸움은 그만하고 민생부터 챙기라는 목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자주 들리는 현실의 언어다.

이 문제의식의 바탕에는 현재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나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다. 시민을 대표하는 대표자(representative)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이것이 흔히 말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Crisis of Representative Democracy)다.

이 위기를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 새로운 상상력이 바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다. 시민의회는 대의제와 관료제에 더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며 숙의하는 수평적 민주주의의 장이다.

선거가 아니라 일정한 기준에 따른 추첨으로 구성되는 시민의회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다. 아일랜드, 프랑스, 스코틀랜드, 대만 등이 시민의회를 통해 민감한 의제를 국민투표로 연결하고,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제안했다. 벨기에는 시민의회, 시민평의회, 사무국, 공공위원회, 의회, 행정으로 이어지는 세밀한 숙의 구조를 설계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시민의회가 대의민주주의의 보완 장치로 작동할 수 있는 핵심에는 '선거'가 아닌 '추첨'이라는 구성 방식이 있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현실의 국회와 지방의회는 성별, 연령, 지역, 소득 등 여러 차원에서 시민 전체를 고르게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민의회 구성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은 '층화표본추출'이다. 전체 인구를 성별, 연령, 지역, 소득 등 여러 계층으로 나누고, 각 계층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을 확보하고, 특정 집단에 치우치지 않은 시민 구성이 가능해진다.

대전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충분히 꿈꿔볼 수 있다. 대전은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방식 결정을 위한 300인 타운홀미팅,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공론화위원회, 숙의민주주의 실현 관련 조례 제정, 정책 제안 플랫폼 '대전시소' 운영 등 공론과 숙의의 경험을 쌓아왔다. 한계와 논란도 있었지만, 시민이 직접 말하고 토론하며 도시의 방향을 정하려는 시도는 이어져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민의회를 제도적으로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일이다. 관련 입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숙의 과정이 실제 정책과 행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시민은 단순한 의견 제출자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 주부, 청소년, 시니어, 자영업자, 청년, 돌봄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모여 도시의 문제를 토론하는 장면은 결코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대의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 대전도 지방정부와 의회, 시민사회가 함께 시민주권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시민의회를 상상하는 일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일이며, 더 나은 대전을 준비하는 일이다.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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