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7장-가새바위에 담긴 효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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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7장-가새바위에 담긴 효녀 이야기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6-21 11:40
  • 신문게재 2026-06-17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가새바위 전설은 병든 아버지를 위해 한겨울 죽순을 구한 효녀가 계모의 시기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 바위가 되었다는 애절한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설화는 맹종 설화나 바리데기 신화와 유사한 효의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선한 희생이 반드시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의 냉혹함과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을 전합니다. 결국 가새바위는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 갈등을 조명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침과 인간다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1 산 전경
도솔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전경 사진=권소민 소장
옛이야기들은 대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세계를 보여 줍니다. 착한 이는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으며, 간절한 마음은 하늘을 움직인다는 서사지요.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민초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위로이자 바른 길로 이끄는 교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가새바위 전설처럼 안타까운 비극도 있었지요.

옛날 도솔산 자락에 한 부부가 외동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새어머니가 작은 딸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큰딸은 새어머니의 구박 속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으며 힘겹게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아버지마저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큰딸은 병이 나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효성에 감동한 산신령은 죽순이 약이라는 계시를 주었습니다. 또한 영험한 호랑이를 보내 산길을 지키게 했지요.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며칠 동안 산속을 헤매던 큰딸은 마침내 기적적으로 죽순을 찾아냈습니다. 큰딸이 무사히 내려가는 모습을 본 호랑이는 다시 산으로 돌아갔지요. 하지만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던 계모와 이복동생은 가위로 그녀를 죽이고, 자신들이 죽순을 찾은 것처럼 꾸며 아버지를 살려 냈습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사악한 모녀를 쫓아내고 딸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지만 그 자리에는 가위 모양의 바위만 남아 있었지요.

2-바위
효성스런 딸의 아픔을 담고 있는 가새바위 사진=한소민 소장
가새바위 전설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을 두루 품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국의 맹종 설화입니다. 병든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자 맹종은 눈 덮인 대밭을 찾아 나섰습니다. 봄에 돋아나는 죽순을 겨울에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서러운 눈물만 흘렸지요. 그러자 하늘이 감응하여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죽순이 돋아나게 했습니다. 큰딸의 효심도 맹종과 다를 바 없었지요.

가족에게서 소외되었음에도 아버지를 위해서 약을 찾아 다닌다는 서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 신화 바리데기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 받은 바리데기가 아버지를 구할 생명수를 얻으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서천서역국으로 험난한 길을 떠났듯, 큰딸 역시 계모의 학대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도 죽순을 찾으려 겨울 산을 헤매다녔습니다. 또한 그 여정에서 신령스러운 조력자가 나타나 주인공을 돕는다는 설정도 비슷하지요. 그러나 결말이 크게 다릅니다. 바리데기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아버지를 살려낸 뒤에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오구신이 되었지만, 가새바위의 큰딸은 바위로 굳어버렸습니다. 선함과 희생에 항상 좋은 결말이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의 냉혹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지요.

3-가새바위
가새바위 사진과 함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판 사진=한소민 소장
가새바위 전설의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는 이러한 비극을 만들어 낸 계모의 존재입니다. 전처의 자식을 괴롭히는 계모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지요. 서양에서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여러 편 등장하며, 동양에서도 중국 당나라의 설화집 『유양잡조』에 실린 섭한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전이 있지요.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한 서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계모와 전처 자식간의 갈등이 오래 전부터 있어온 보편적 문제였음을 보여 줍니다. 어쩌면 이야기 속의 계모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질투와 탐욕을 상징하는 존재이며 계모와 딸의 갈등은 우리 마음 속 이기심과 이타심의 대립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린 그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바위와 관련된 설화는 흔히 바위의 독특한 생김새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가새바위 역시 가위처럼 벌어진 형상 때문에 시작되었겠지만 선조들은 단순히 모양을 설명하는데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바위에 우리가 사는 동안 내내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침을 담아 놓았지요. 지극한 효성이 불러온 기적, 인간의 질투와 탐욕이 빚어낸 비극, 그리고 선한 마음이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삶의 진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말입니다.

비극이기에 더욱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의지할 데라고는 병든 아버지밖에 없었던 소녀는 혹여 아버지를 잃게 될까 두려워 한겨울 산속을 헤매며 기적처럼 죽순을 구해내고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도솔산 등성 위 낡은 안내판에 담긴 그 애절한 이야기를 우리가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는지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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