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 없는 대전·충남
2022-04-24
"한국 근현대 사법 역사를 일군 우리지역 법조인을 찾고 발굴하는 노력은 왜 없는 거죠?"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랜 사법 역사에서 대중에게 기억되는 지역 법조인 이름이 없다는 데에 큰 아쉬움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는, 법조계를 빛낸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2022-04-24
4월 25일은 수사와 기소, 심문을 사또 혼자서 하는 시대를 마치고, 판사와 검사에게 역할을 맡겨 인권 중심의 사법체계가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제59회 법의날이다. 변호사회가 제안해 제정된 이 날은 우리 사회가 법 앞에 평등하게 다스려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권력의 자의..
2021-10-27
박경부 경부고속도로기념사업회장
1968년 대전공구 감독관으로 공사 이끌어
금강과 산악지형 관통 위해 터널·육교 난공사
대전국토관리청장 마티터널 개통까지 인연
"교통이 편리한 대전이라고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는 하천과 산악을 관통하는 가장 험한 공..
2021-10-23
1971년 7월 7일자 단신보도로 세상에 알려
왕릉 직접 보고자 전국에서 1만명 찾아와
유물 일부 서울로 반출돼 주민들 반대시위
1971년 7월 7일자 '백제시대 전축고적 발견'이라는 단신 기사에서 시작된 무령왕릉 발굴 소식은 전국을 흥분시켰다. 1500년..
2021-10-06
김광철 대전교통 대표이사 겸 운송사업조합 이사장
2대째 버스회사 운영하며 시내버스 증인"시민의발이자 공동관리위 빛나는 역사"
"버스가 개통할 때 마을에서 잔치가 열리고, 폭설에 운행을 중단할 때 등교 못하는 학생들을 걱정하던 기사 모습이 선합니다" 김광철 대전교통..
2021-09-30
절토량 47%, 터널 90% 대전~대구간 집중
공사중 대전육교·당재터널 무너짐 희생
개통 전 미리 달려보고 "굼벵이같은 열차"
착공 2년5개월만에 개통 77명 희생 앞세워
428㎞ 서울~부산 잇는 경부고속도로 공사에서 절토량의 50%, 장대교의 60%..
2021-09-21
고아 품은 유을희·광복군 1호 신정숙
1991년 기초의회부터 정계 진출 개척
1957년 부당한 감원에 반발 신문보도
건국 후 지역에서 여권신장을 위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한 발짝 내딛은 걸음만큼 평등문화와 인권신장에..
2021-09-15
뿌리 깊은 유교사상의 대전과 충남에서 여성운동은 연대와 투쟁의 연속이었다. 조국의 근대화라는 깃발 외에는 여성의 권리나 성평등 의제는 논의되지 못했다. 집에 불이나면 주부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고 미아가 발생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길가에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 데서 원..
2021-09-08
역전 시내에 각종 터미널 산재해 불편·위험
교통·운송분야를 외곽으로 이전해 기능분산
종합터미널 조성해 동대전 개발 원동력化
한 곳에 뒤엉킨 도시기능을 분산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을 대전시는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 시작점을 대전역 인근에 밀집한 각종 정류장과 터..
2021-09-08
장일용 금남고속 전 대표이사
37년 금남고속 종사 변천사 경험
23세에 시외버스 회사에 취업해 11년간 대표이사를 역임 후 2014년 퇴임한 장일용 금남고속 전 대표는 터미널과 여객수송의 변천사를 몸으로 경험했다. 대전 대흥동 지금의 대림빌딩 자리에 시외버스터..
2021-08-27
대전철도국 34년 송인영 (사)대전철우회장
디젤기관차 시작됐으나 안전설비는 부족
경부·호남 무단보행 사상사고 빈번하던 때
"철도 있는줄 모를정도 안전하게 돼 감사"
"기술이 좋아져 철도는 빨라졌는데 무단보행은 여전하고 안전시설은 받쳐주지 못하던 때 안타까운..
2021-08-27
1952년 계룡버스 대전역~유성 첫 운행
16인승 마이크로버스에 도로는 비포장
노선변경 행정력 안 먹혀 회사가 임의대로
금남교 추락사고 등 대형 인명피해 초래도
1970년 파업 앞두고 공영제 개념 처음 소개
대전 초창기 시내버스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
2021-08-18
기차·대전역 소식 시민들 관심 높아… 문 앞 기찻길 보행 충돌사고 잦아
年 철도보행 260명 사망 희생 잇달아… 68년 판암역 유조차 전복사고 등
철도가 낳은 도시 대전은 철도를 극복해서야 온전한 도시가 되었다. 도시를 잉태한 탯줄은 사람과 생활을 옥죄는 쇠사슬과..
2021-08-11
1943년 7월 15일 목동서 첫 방송전파 발사
일본어 위주 방송에서 한국어 이중방송으로
6.25때는 서울 대신 대전서 중앙방송 역할
1964년 문화방송 민영라디오 개막 다매체화
▲대전 목골에서 첫 방송전파=78년 전 대전 중구 목동 언덕바지(목골)에 세워진..
2021-08-11
27일 저녁 충남도지사 관사서 서울방송에 연결
대전서 서울사수 대통령 특별담화 방송 후 반복
1950년 대전방송국 방송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고 유병은 옹은 이승만 대통령의 서울사수 거짓방송이 이뤄진 그날을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유병은 자서전에 의하면 당..
2021-06-30
퇴출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역사에서 사라진 충청은행. 처음 문을 연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이룩한 112개 은행지점은 6월 29일부터 문을 닫았고, 주주 1만1069명의 주식은 가치를 상실했다. 충청은행 30년사에 마지막 페이지가 슬픈 결말이어서인지 책의 첫..
2021-06-30
신용남 세무회계사무소 대표1967년 대전은행 설립추진위 사무소 직원충청은행 상무 및 감사 1994년 퇴직 '증인'"대전은행 설립추진위 간판을 들고 세 번을 이사했지, 지역자본이 뒷받침돼야 발전할 수 있다는 일념은 변하지 않았어" 신용남(81) 세무사는 1967년 5월..
2021-06-23
김기출 전 동문회 사무국장 겸 학보사 기자1971년 통합때 두 캠퍼스 정관에 반영 요구1980년 완전한 분리독립 때도 학생들 지지"학생들과 지역사회는 줄곧 두 대학에 대등한 통합과 운영을 요구했고, 지켜지지 않을 때 과감히 일어났지" 1969년 대전대학 국문과에 입학한..
2021-06-23
65년 역사의 한남대학교가 1956년 대전대학에서 시작해 1971년 숭실대와 통합한 숭전대학이었던 역사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학의 교명이 바뀌는 것은 기억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두 대학을 통합할 때 학생과 지역사회가 하나로 뭉쳐 대전에 교육자산을 지키고자 했..
2021-06-09
"계룡산에 5㎞ 길이의 산성을 발견한 게 1980년대 초, 문화재로 지정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요"지난 40년간 계룡산관리사무소에 재직하며 공원을 가꾸고 보살핀 조성열 씨는 계룡산성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당사자다. 계룡산성은 충남 공주방향의 해발 800m 산..
2021-06-09
1968년 지정에 앞서 67년부터 추진위 구성충남도·건설부부·유솜 찾아가 필요성 설득"사교지대" 폄하엔 "부끄러운 망언" 반박620사업과 통신탑으로 도민들 제한 여전계룡산은 1968년 국립공원 지정에서 제외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계룡산이 무당 등의 사교지대에 불과하고..
2021-06-03
1966년 5월 수도이전를 지면 통해 제안좌담회·석학의 기고 등 대전서 천도운동 전개인구와 산업, 문화 서울 밀집문제 제기돼백지계획보다 10년 앞서 자생적 천도론 싹터수도 서울을 대신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들어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정책개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21-06-03
박병호 충북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1977년 중화학공업단 기획단 연구 참여공주 장기지역 장군산과 금강 활용 설계"세종시 중심의 청주·대전 광역화를" 당부"시작은 경제부흥과 안보상의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 국토 균형발전에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그동안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
2021-05-13
1968년 홍도동공동묘지 이전사업 착수1971년 화장장마처 철거돼 시민들 불편신상리·상소동 취소 후 2전3기만에 준공1만4천기 합장한 홍도총에 일본인 발길공동묘지와 화장장을 마련하는 일은 대전이 도시로 성장하는데 한 번은 넘어야 할 성장통과 같았다. 대전시는 공동묘지를..
2021-05-13
"현충원과 산내 골령골, 이사리 송씨문중 분묘군 그리고 뿌리공원까지 죽음을 기억하는 특별한 도시 대전이 안 보이세요?"양무석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명예교수는 대전과 충남이 죽음을 다루는 추모에 있어서 특별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양 명예교수는 2000년 지역에 처음 장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