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기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만 건드려도,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격한 반응을 보이는 '가슴에 불덩어리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2016년, 벽두부터 여러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연일 터진 친부모에게 학대받다 죽어 간 아이들, 그 아이들의 시체와 더불어 산 부모들, 그 엄동설한 속 온몸이 락스에 젖은 채 욕실에서 죽어간 원영이 이야기….
요즈음 세간에 떠오르는 이런 아동학대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에 참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죽어간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그들을 학대한 부모들의 삶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삶은 어떠한 인생행로를 밟아 온 삶이었을까?
얼굴도 이름도 전혀 모르는, 한 번도 그들을 만나 사연을 들은 적은 없지만 아마 그들 대부분이 많은 상처와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주위 자신의 상처 때문에, 분노 때문에, 적대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마구 독화살을 쏟아대고 있을 제2의, 그리고 제3의 무수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가슴속에 쌓인 한을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풀었던 어머니의 아픔은 나에게 전이되어 나 또한 신경질과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다. 날마다 입속으로 도망치는 어머니와 얼음 덩어리같이 찬 아버지 사이에서 항상 소외되고 돌봄을 받지 못했던 내 안의 짜증과 욕구불만의 덩어리는 만만하다 싶은 상대에게 터져나갔다. 이웃집 가난한 아주머니의 아들 삼식이란 놈을 항아리에 가두고 뚜껑을 닫은 적이 있다. 항아리 속에서 공포에 질려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든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곤 했다. 삼식이가 나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가정에서 받은 나의 상처는 삼식이 에겐 무자비한 가해자의 폭력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무서운 가해자가 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악순환이다.
이처럼 어떤 폭력이든 간에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배후에는 마음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권력의 폭력자 히틀러 역시 성장과정의 상처가 그렇게 처참한 폭력을 발생시킨 뿌리였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계속 품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폭력을 행할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다.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가정에서 싹튼다.
미국의 미시간대학과 하버드 대학은 장수 연구로 활발한 대학인데, 이들의 공동 연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창 활발히 활동할 50대에 성인병이 발병한 환자들, 암이나 당뇨 혹은 고혈압을 앓는 사람들의 원인이 바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에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100명 중 81명은 성인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100명 중 99명이, 99%가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우리에게는 두 갈래의 길, 곧 '상처 입은 가해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것이지, 선택의 길이 있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몸에 배어버린 행동양식인 우리의 혈기, 분노와 성냄으로 상처 입어 으르렁거리는 가해자로 살 것인지, 아니면 험한 아픔은 많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사용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태기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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