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이름붙인 '산업혁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동력혁명인 1차 산업혁명,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 정보기술(IT)과 자동화 혁명인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2차 혁명 끝자락과 3차 혁명에 잘 편입됐지만 그와 게임이 안 되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 등 미래형 기술이 산업에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이제부터 밀려온다.
산업구조적으로도 그것이 체감된다. 수출 위주의 추격형 전략으로 이룬 고도성장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15년 전부터 우리의 철강→정유→석유화학→자동차·조선해양→스마트폰 순으로 하나씩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 트럼프노믹스 충격파는 가늠하기 힘들고 수출과 투자, 소비 모두 불확실하다. 최순실 사태 이후, 박근혜 정부 정책기조를 이어가기 애매해진 현 경제팀은 대변환기의 경제 생태계에 대처할 여력도 능력도 없다.
현재는 그 밑으로 추락하고 있다. 기업은 공장문을 닫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닫는다고 아우성이다. 혁신 기술의 영향력 증대, 경제 중심축의 신흥국 이동, 인구 고령화, 교역과 자본의 보다 활발한 이동, 무엇보다 한 세기 걸친 기술을 단번에 뛰어넘을 엄청난 트렌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4차는 3차 산업혁명의 디지털이 그 토대여서 상대적으로는 유리하다.
그렇다고 범위, 속도, 깊이를 모르고 덤벙대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은 한국에 도전이자 기회”라는 말을 했다. 딱 열흘 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말을 복창했지만 막상 눈앞의 저성장 시대 대응 전략이 더 걱정이다. 김영삼 정부에서도 연평균 7.4%, 김대중 정부 5.0%, 노무현 정부 4.3%를 지켰던 성장률이다. 이명박 정부 2.9%에 이어 최근 3년 연속 2%대가 고착됐다.
성장률 후퇴는 경제규모의 뒷걸음질을 의미한다. 내년에는 2%대도 쉽지 않다. 이 시점에서는 10년째 1만 달러 고지에서 선·후진국 사이를 헤매던 15년 전을 복기해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 10년 역시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갈림길이다. 산업 전 분야로 파급될 4차 산업혁명은 낯설지만 그 낯선 것을 낯익게 해야 한다.
정부도 나름대로 준비는 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보다 10배 빠르고 300배 크고 3000배 강한 충격이 세계경제를 강타한다니까 깜짝 놀랐는지 내년 3월까지 4차 산업혁명 전략을 내놓겠다고는 했다. 경제는 구명튜브가 절실한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차기 정부 이전의 대내외 리스크 관리조차 벅찬 게 현실이다. 대선의 게임 체인저 혹은 페이스메이커들은 '잿밥'에 눈이 어두운 듯 보인다.
2016년이 저물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내년 성장률 동반 하락 예측에 벌써부터 숨이 차다. 5000년 인류사의 변곡점은 그만두고 당장 탄핵 정국에서 경제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제아무리 용빼는 글로벌 전략을 세워봐야 4개월 내지 8개월짜리 시한부 정책이 된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얼른 끝장내야 좋은 이유다. 전설은 소파에 앉아서 만들지 못한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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