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그까짓 자유 따위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그까짓 자유 따위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1-09-01 08:47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신기용
신기용 변호사
영화 '쇼생크 탈출'은 1994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명작이다. 탈옥이라는 어쩌면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자유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기 때문이다. 노역 중간에 햇볕을 받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장면, 높은 교도소 담장 안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울려 퍼지는 장면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늘 누리고 있는 자유가 사실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20여 년이 되어 가는 오랜 영화가 새삼 다시 떠오른 이유는 문득 요즘 들어 자유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들과의 비교에서 점점 더 '그까짓 자유 따위'라는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강에서 의대생이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실체에 대한 국민적인 논란과 별개로 당시 이 사건은 한강공원에서의 음주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촉발하기도 했다. 내심 놀라웠던 것은 상당히 다수의 사람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시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 주기를 국가에 요청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낯익기도 하지만 익숙해지기에는 끝내 거부감이 든다.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방지할 필요성이나 타인의 음주로 인한 불편함 등의 가치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필요를 위해 도입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찾아볼 여유도 없이 우선적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의 소중함이 퇴색됐다는 의미는 아닐까.



'민식이법'이 통과됐을 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일종의 안도감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도로변을 걷다가 아이들의 손만 놓쳐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 법률로 안전장치를 강화해 준다면 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민식이법이 제공하는 안전장치의 방식은 논란을 끊이지 않게 한다. 민식이법의 요체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인데, 교통사고는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그 경중을 불문하고 사망의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고의적으로 범한 아동에 대한 강간 범죄보다 중한 형이 예정돼 있다.

물론 안전은 중요한 가치이며 특히나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안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민식이법의 수단은 매우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로 그 안전에 대한 대가로 큰 자유를 담보로 제공하길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마련해야 할 설비나 제도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히 수단을 검토하기보다 당장 자유에 관한 강력한 형벌을 수단으로 내세우는 방식에는 쉽게 동조하기 어렵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가함에 있어 과연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맞을까. 그 수단은 합리적이고 명확한 것인지 엄중한 검토가 이루어진 다음 입법을 진행하고 있을까.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의 제약이 일상생활이 됐다. 우리 국민은 전례없는 일상의 규제에 저항하기는커녕 협조를 다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의 백신 수급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회복하는 대가로 그다지 비싼 값을 지불할 의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자유의 제약이라는 사태가 그만큼 엄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더 무서운 일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주인공과 박탈된 자유에 길들어진 수감자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그려진다. 조금씩 침식되는 자유에 길들어지기는 더 쉬운 일이다. 공기처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유라고 하더라도 점점 희박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막히게 될지 모른다. 자유는 우리 스스로 소중하게 지켜야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이 쉽게 망각되지 않았으면 한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