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45. 참삶의 나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45. 참삶의 나이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3-11-23 12:00
  • 신문게재 2023-11-24 18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박노해 시인의 '삶의 나이'라는 시에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튀르키예의 악세히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진정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나이를 카운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않는다고 하지요. 생년월일을 따져 매기는 물리적인 나이에 연연하는 우리는 한 번쯤 새겨 보아야 할 재미있는 전통이고 문화입니다.

악세히르 마을 사람들은 '최고의 날'을 맞을 때마다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지요. 그가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나이로 계산하고 그것이 '참삶의 나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빈번하게 접하는 상황 중에 학연과 지연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이 벗어났다 싶으면 으레 "몇 살이냐?"라는 질문이 뒤따르지요. 나이는 마치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과 현재의 모습을 대변하는 척도로 통용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나이는 많지만 나잇값은 못 한다고 느낀다든지, 어리지만 옹골찬 기백과 깊이를 가진 이를 만날 때 나이가 가져다주는 이중성을 실감하며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하지요. 가끔은 '밥 몇 그릇 더 먹었다는 게 뭐 대수일까?' 싶은 자조감에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게 됩니다.

저는 사적 자리에서 나이를 물으면 오래전부터 '서른아홉'이라고 대답합니다. 다중이 모인 자리에서 유머로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를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두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 스스로 나이 듦을 경계하려는 의도이고, 둘째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자칫 제 나이의 무게를 의식해 무거워질 것을 미리 예방하고자 하는 뜻에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나잇값'이라면 서른아홉도 되지 않을 거라는 반성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말대로 '참삶의 나이'로 따진다면 서른아홉도 한참 많이 높여준 것이지요.

참삶을 철학적 또는 영적으로 풀이한 사람이 있지요. 그는 달라이 라마, 틱 낫 한과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로 알려진 독일 출신의 에크하르트 톨레입니다. 그는 '에고'를 비판합니다. 에고의 가장 큰 병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과거나 미래에서 찾고 현재의 순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에고는 본래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머릿속이나 기억과 생각의 범주 안에 있는 일종의 착각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진정한 깨어남'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식 상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깨어있는 의식을 선택할 때 개인의 삶이 변화되고 반복되는 갈등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톨레가 말하는 '깨어남'이고, 박노해 시인이 표현한 '참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 고개마다 새로운 기쁨이 있다면 늙는 것이 아닙니다. 꿈과 희망을 유지한다면 그것도 늙는 것이 아닙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라고 하였지요. 악세히르 마을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참삶이어야 나이가 올라가는데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참삶을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른아홉이라는 저의 나이는 참삶의 기준에서는 훨씬 부풀려진 것이지요. 오늘부터라도 태어난 시점에 매이지 않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참삶의 나이를 세어가며 산다면 한결 멋진 삶이 되겠지요. 우리, 자신의 나이를 '참삶의 나이'로 한번 세어봄이 어떨는지요.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르포] "지하 파고, 흙더미 쌓인 트램 공사장"… 폭우 앞둔 대전 도심
  2. 허태정 대전시장 "무너진 시정 회복 시급…민생 최우선"
  3. 반도체, 장관인사 이어 차관도 충청 홀대…19개부처 달랑 2명
  4. "지우고, 살리고…" 수장 바뀐 대전 3개 자치구 전임 정책 대수술
  5. 허태정 시장 "시민의 삶의 무게를 시정의 나침반으로 삼겠다"
  1. [문예공론] 이순(耳順)에 서서 예순의 문턱에서 쓰는 자서(自序)
  2. 대전 갈마동 노후 주거지 국토부 정비 지원사업 최종 선정
  3. [오늘과내일] 책임과 회피
  4. 충남대, '메가 유니버시티' 재확인…"대학 혁신 구성원 협력 필요"
  5. [월요논단]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재정난 후폭풍…자치구 현안사업 줄줄이 빨간불

대전시 재정난 후폭풍…자치구 현안사업 줄줄이 빨간불

대전시 재정난에 시비를 투입해야 하는 각 자치구 현안사업 역시 잇따라 빨간불이 켜졌다. 대전의료원, 대덕구 신청사 이전 등 주민 복지나 미래성장 동력과 직결된 굵직한 사업들이 건립 과정에서 예산 부족으로 난항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제3시립도서관, 제2시립미술관, 음악전용홀 등 민선 8기 대전시가 추진했던 대형 SOC 사업도 지연 또는 무산 위기에 처했다. 6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지난 1일 민선 9기 대전시와 5개 자치구가 출범하자마자 재정난에 직면하면서 내부적으로 심란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민선 9기는 국비 확보와 재정 운용,..

비싼 기름값, 더 빨리 오른 이유 있었네…검찰, 4대 정유사 26조원대 가격담합 파악
비싼 기름값, 더 빨리 오른 이유 있었네…검찰, 4대 정유사 26조원대 가격담합 파악

중동전쟁 직후 대전지역 기름값이 급등한 배경으로 국내 정유사들의 가격 담합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주유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타사와 유가 인상 시기와 규모를 교환하고, 중동전쟁 직후 유가를 대폭 인상한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와 가격 결정 부서 직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가격을 담합한 SK에너지 및 담당 직원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이른바 리니언시에 따라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기소 대상에서는 빠졌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

한화, 전반기 마지막 NC와 운명의 3연전 `5위 탈환 노린다`
한화, 전반기 마지막 NC와 운명의 3연전 '5위 탈환 노린다'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이 한화 이글스의 전반기 성적표를 좌우할 전망이다. 시즌 내내 5할 승률 안팎에서 순위 싸움을 이어온 한화는 NC 다이노스와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5위 탈환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추격을 허용한 채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을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섰다. 한화이글스는 7일부터 NC 다이노스와 홈 3연전에 나선다. 한화는 올 시즌 꾸준히 반등의 계기를 만들었지만 흐름을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연승으로 상승세를 탔던 흐름이 다시 꺾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상위권 도약의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그럼에도 5위와의 승차가 크지 않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방학과 휴가철 앞두고 분주한 여권창구 방학과 휴가철 앞두고 분주한 여권창구

  • 올 여름엔 나도 ‘몸짱’ 올 여름엔 나도 ‘몸짱’

  • 장맛비 내리는 대전 장맛비 내리는 대전

  •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