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우리 애가 체했어요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우리 애가 체했어요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 승인 2024-01-16 16:58
  • 신문게재 2024-01-17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삼남제약 대표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40여년 전, 지방에서 군의관 재임 시절에 전해 들은 얘기이다. 지역의 중견 의사 네 분이 골프를 치다가 한 분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체했네' 라고 했고 다른 분들도 동의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 분은 뇌출혈로 골든타임을 놓쳤고, 결국 돌아가셨단다.

소아과 의사로 30여년 간 일하는 동안 제일 듣기 싫은 얘기가 '우리 애가 체했어요' 였다. 젊은 의사 시절에는 '세상에 체했다는 진단명은 없다'며 애기 엄마를 설득하려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과 타협하게 되었다. 병명으로는 다양하지만 잘 나을 것이 분명한 환자에게는 '체했지요?' 하는 질문에 흔쾌히 동의했고, 심지어 내가 먼저 '체했다'고 얘기하면 애 부모는 만족하고 더 이상 아이 상태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오랜만에 '체했다' 소동을 겪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의사를 찾았고, 나에게 '친구가 체했으니 손 끝 따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진단은 일반인인 내가 했으니, 의사인 당신은 치료만 하라'는 얘기로 들렸기에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언뜻 보기에도 환자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뇌졸증으로 돌아가신 의사 생각도 났다. 간단한 진찰 후 물어보니 평소에 혈압이 낮았다고 한다. 거기에 여행 중 피로와 공항 도착 전에 받은 마사지로 인해 저혈압이 심해져 나타난 증상으로 짐작되었다. 머리를 낮추고 다리를 올린 상태로 누워 있기를 권했고, 조금씩 회복되던 중에 공항 의료진이 모시고 갔다가 비행기 출발 전에 회복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누구나 선입견을 갖고 산다. 그것이 논리적인가는 차후 문제이고 내가 믿으면 그것이 나에게는 진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책도 많이 읽고 많은 사람 만나 대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방향은 거꾸로인 것 같다. 내가 믿는 것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게 되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알고리즘이 같은 생각의 친구들을 소개한다. 이런 과정이 쌓이다 보니 절대로 생각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아지고, 그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의 끝은 어디일지 걱정이다.

지난 해를 돌아보며 대학교수들이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한 대학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견리망의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 정치란 본래 국민을 '바르게(政=正)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견리망의 하면 우선은 풍요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공멸하게 된다"며 비판했다고 한다. 선입견은 아집을 부르고 아집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면 견리망의하는 지도자들을 만드는 토양을 조성할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올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세월도 참 힘들었는데, 앞으로 몇 년 간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시절을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편견은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방해하고, 결정이 바르지 못하면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이로움만을 좇으면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수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매일 매스컴에서 접하고 있다.

올해 나의 소망은 첫째, 무엇이 좋은 이(利)이고 무엇이 나쁜 '이' 인지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소망은 힘들지라도 의(義)로움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비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몇 년은 힘들다고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시, '김해맛집' 82곳 지정 확대...지역 외식산업 경쟁력 강화
  2. 인천 남동구 장승백이 전통시장 새단장 본격화
  3. 파주시, 운정신도시 교통혼잡 교차로 신호체계 개선
  4. 고양시, 2026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5. 대전 횡단보도 건너던 50대 승합차 치여 숨져
  1. 고등학생 70% "고교학점제 선택에 학원·컨설팅 필요"… 미이수학생 낙인 인식도
  2. 대전·충남 우수 법관 13명 공통점은? '경청·존중·공정' 키워드 3개
  3. 충남도의회, 인재개발원·충남도립대 행정사무감사 "시대 변화 따른 공무원 교육·대학 운영 정상화" 촉구
  4. [홍석환의 3분 경영] 가을 비
  5. 대전 환경단체, 열병합발전 발전용량 증설 승인 전기위 규탄

헤드라인 뉴스


1천만원 이상 고액‧상습체납 대전 247명, 94.6억원 달해

1천만원 이상 고액‧상습체납 대전 247명, 94.6억원 달해

대전지역에 1000만원 이상 고액·상습 체납자 247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대전시는 19일 지방세 및 지방행정제제·부과금 체납액이 각 1000만 원 이상인 고액·상습체납자의 명단을 시 누리집 및 위택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는 올해 1월 1일 기준 체납 발생일부터 1년이 지난 1000만 원 이상 체납자이며 지난 10월까지 자진 납부 및 소명 기회를 부여한 후 지방세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공개된 정보는 체납자의 성명·상호(법인명), 나이, 직업, 주소, 체납세목, 납부기한 및 체납요지 등이며..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개막이 5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섬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예술감독과 사무총장, 민간조직위원장 등을 잇따라 선임하며 추진 체계를 재정비하고, 전시 기본계획을 마련하며 성공 개최를 위한 시동을 켰다. 19일 조직위에 따르면, 도와 보령시가 주최하는 제1회 섬비엔날레가 2027년 4월 3일부터 5월 30일까지 2개월 간 열린다. '움직이는 섬 : 사건의 수평선을 넘어'를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는 원산도와 고대도 일원에서 펼쳐진다. 2027년 두 개 섬에서의 행사 이후에는 2029년 3개 섬에서, 2031년에..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가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을 확대하는 등 지역 건설업체 살리기에 나선다. 정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지방공사 지역 업체 참여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지역 건설사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지방공사는 지역 업체가 최대한 수주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우선 정부는 공공기관(88억 원 미만)과 지자체(100억 원 미만)의 지역제한경쟁입찰 기준을 150억 원 미만까지 확..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