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다문화]감성 가득한 보리밭 너머의 한 많은 보릿고개

  • 다문화신문
  • 공주

[공주다문화]감성 가득한 보리밭 너머의 한 많은 보릿고개

  • 승인 2024-06-04 16:37
  • 신문게재 2024-06-05 10면
  • 박종구 기자박종구 기자
6-5_박진희
제주 가파도, 전북 고창군 공음면, 경남 함안군 칠서면, 충남 보령시 천북면 등 열거한 곳들은 청보리축제 명소다. 이중 고창 공음면과 보령 천북면은 각각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와 '그해 우리는'의 촬영지다. 그렇다 보니 매년 5월~6월이면 푸른 보리밭을 배경 삼아 감성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그에 비해 중•장년층 이상은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에 잠시 잠깐 시선을 보냈다가 "소문만 요란하지 볼 거 하나 없네. 우리 어릴 땐 집 마당만 나서면 백날 천날 보던 풍경인데."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에 푸념까지 섞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오히려 축제장 한쪽에 서 있는 노래비의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죽 훑으며 옛 추억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이 노래의 제목은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는 농촌에서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5~6월(음력 4~5월)을 말한다.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한해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이 500만 t이 넘는 요즘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하고, 배곯기를 밥 먹듯이 한 궁핍했던 시절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흔히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라고 한다. 온갖 산해진미로 포식을 해도 꼭 밥 한술이라도 떠야 그제야 식사가 끝났다고 여기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이때 '밥'하면 요즘 사람들은 쌀밥을 떠올리겠지만, '이팝에 개기국'을 최고의 밥상으로 쳐주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은 거무튀튀한 보리가 쌀보다 많이 들어간 혼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갈지도 모른다.

보리는 쌀과 함께 주식으로 쓰이고 있어 쌀 다음 가는 중요한 곡식이다. 게다가 현대인들이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끌게 되면서 보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수직 상승 중이다.

쌀은 도정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니 원래보다 영양 성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정제한 탄수화물이다 보니 지나친 섭취는 혈당을 급격히 올린다. 반면에 보리는 지질과 탄수화물이 적으나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나 임산부, 칼로리를 적게 섭취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게 쌀보다 좋다.

보리는 그 쓰임새도 넓다. 주식 외에 감주, 누룩, 막걸리, 고추장, 수제비, 엿기름, 차, 빵에 이용된다. 미숫가루나 보릿가루의 소화율은 보리밥보다 좋고, 보리 또는 보릿가루를 섞으면 비타민 B1, B2, 니아신(niacin) 등이 증가한다고 한다. 땀을 많이 흘리고 입맛이 없어지는 여름에 그늘에서 참으로 들이키는 미숫가루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맛 좋고 영양 많은 든든한 식사 대용으로 충분했다.

최근 빵을 즐겨 먹는 외국인들에게 밥알을 뺀 전통 식혜가 건강 음료로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주린 배 움켜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던 한 많은 보릿고개를 어찌저찌 넘고 나니, 꽁보리밥에 나물 몇 가지와 보리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별식 한 그릇에 섧디 서럽던 그 옛날의 긴 한숨이 씻겨나간다.

박진희 명예기자(한국)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맛있는 여행] 108-포천 고모저수지와 욕쟁이 할머니집의 구수한 맛
  2. '조상호 vs 최민호', 세종시 스포츠 산업·관광·인프라 구상은
  3. "단속 안하네?"… 우회전 일시정지 단속 실효성 의문
  4. [대전에서 신화읽기] 제13장-석교동 돌다리, 자비가 놓은 모두의 길
  5. 2차 고유가 피해지원금 접수 시작
  1. 충청 U대회 조직위, 이정우 신임 사무총장 선임
  2. 새로운 시작…‘이제 어엿한 어른입니다’
  3. 대전 환경단체 “공영주차장 태양광, 법정 의무 넘어 50면으로 확대해야”
  4. 때 이른 더위 식히는 쿨링포그
  5. "세종 장애인 학대, 진상 규명을" 범국민 서명운동 돌입

헤드라인 뉴스


4년 뒤 노후주택 17만세대… 충청 주택시장 재고과잉 우려

4년 뒤 노후주택 17만세대… 충청 주택시장 재고과잉 우려

앞으로 4년 뒤 충청권의 준공 후 5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이 17만여 세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또한 이들 노후주택이 적절히 멸실되지 않을 경우, 충청권을 포함한 전국 주택시장이 재고 과잉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19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 전환에 따른 부동산시장 영향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멸실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2030년 충청권의 준공 후 5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17만 3000여 세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지역별로는 충남이 8만 8000세대로 가장 많았고, 충북 5만 5000세대..

교통망 넓히고 생활권 키우고…도시 체급 키우는 대전
교통망 넓히고 생활권 키우고…도시 체급 키우는 대전

대전이 교통망 확충과 광역 생활권 확대를 중심으로 도시 외연 넓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과 충청권 광역철도, CTX(충청권 광역급행철도) 구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대전·충남 행정통합과 원도심 재정비 논의까지 맞물리면서 도시 구조 자체가 변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한 개발 사업을 넘어 교통과 행정, 산업과 생활권을 하나의 축으로 묶으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대전의 도시 기능 역시 점차 확장되는 흐름이다. 대전의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교통망 재편이다. 오랜 기간 표류했던 도시철..

"안 걸릴 줄 알았나?"… 무인점포 한 곳서 17차례 절도 20대 검거
"안 걸릴 줄 알았나?"… 무인점포 한 곳서 17차례 절도 20대 검거

한 달 동안 무인점포 한 곳에서 17차례 절도를 일삼은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중부경찰서는 상습 절도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대전 중구의 한 무인점포에서 17차례에 걸쳐 총 20만 원 상당의 과자 등 식료품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앞서 2월부터 한 달 간 점포 한 곳에서 수차례 진열된 상품을 훔친 A씨는 3월 18일 밤 10시께 해당 점포를 다시 찾았다가 덜미가 잡혔다. 다른 손님이 가게에서 나가길 기다린 뒤 A씨는 과자, 빵 등을 집어 겉옷 주머니에 넣고 계산하지 않은 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전국동시 지방선거 투표용지 인쇄 전국동시 지방선거 투표용지 인쇄

  • 때 이른 더위 식히는 쿨링포그 때 이른 더위 식히는 쿨링포그

  • 2차 고유가 피해지원금 접수 시작 2차 고유가 피해지원금 접수 시작

  • 새로운 시작…‘이제 어엿한 어른입니다’ 새로운 시작…‘이제 어엿한 어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