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모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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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모과나무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4-06-18 17:23
  • 신문게재 2024-06-19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작업실 앞 마당에 오래된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40여년 가까이 되었을 듯싶다. 작업실은 오래된 구옥을 헐고 새로 지은 것인데, 구옥을 구입할 때 모과나무와 감나무가 마당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한그루씩 있었다. 그때 이미 상당히 큰 나무였고 집주인이 집을 지으면서 처음 심었다고 하였으니 그 정도 나이가 되었을 성 싶다. 감나무와 모과나무를 베어 버리지 않고 살려서 작업실을 짓겠다는 욕심 때문에 건물을 철거할 때에도 여러 가지 번잡한 일들이 많았고, 새로 지을 작업실의 배치에도 제약이 있고, 공사하는 과정에서도 나무를 피해서 일하느라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기껏 나무 두 그루 때문에 그 번거로운 일들을 다 감당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변 사람들과 공사하는 분들의 조언, 또는 불평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나무 두 그루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접지 않고 견디어 냈다. 공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생을 하면서 견디어 내고는 있었지만 사실 감나무는 고민이 좀 되기는 했었다. 감나무가 마당에 둔덕을 만들어 심어져 있는 까닭에 작은 마당에 너무 큰 감나무 둔덕이 생겨서 마당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걱정을 하면서도 최대한 살리자 하고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 공사를 진행했지만 공사를 다 마무리한 이후에 둔덕이 마당에 비해서 너무 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결국은 베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과나무는 다행히 현관에 들어서는 입구여서 현관 진입부 바닥을 높이면서 나무의 둔덕 높이와 맞도록 처음부터 설계를 했기 때문에 무리없이 살릴 수 있었다. 주위에서는 나무는 빨리 자라니까 베어버리고 적당한 위치에 원하는 나무를 심으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나무는 생각보다 빨리 자라는 것이 아니기도 할 뿐 더러 그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과정에 나무를 심고 가꾼 사람의 온기와 애정, 그리고 일상의 여정이 함께 배어져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선뜻 베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무 뿐 아니라 구옥을 철거할 때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던 유리문 한 짝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굵은 지주대 하나를 버리지 않고 따로 떼어내 공사하는 분에게 창고에 보관해 달라고 맡겨 두기도 했다. 집을 철거하면서 그 흔적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같아 나중에 새로 작업실을 짓고 나서 적당한 자리에 인테리어 소품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을 새로 짓더라도 그 터에서 이어져 온 삶의 흔적들이 나무 한그루에, 창문 하나에, 계단 하나에 나이테와 같이 켜켜이 쌓여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무도 집도 모두 생명을 가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전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고 전혀 새로운 작업실을 짓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나무를 베어 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감나무 묘목 한 그루를 심었는데 이제 제법 자라서 가을이면 감이 몇 개씩 열리기 시작하였지만 이전부터 있던 모과나무에 비하면 어린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모과나무는 가을이면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동네에서 작업실을 모과나무집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키도 몸집도 제법 커졌다. 이전의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모과나무가 수십 년의 세월을 지켜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집도 남이 만들어 놓은 집에 가구만 가지고 들어가 사는 일이 흔한 일이 되었고, 쉽게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이란 것은 순식간에 없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집에 대한 향수나 기억, 그리움이란 말 자체가 생경한 시대가 된 것같다. 말하자면 집도 일회용품과 같은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집이나 나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마당의 흙과 풀 한포기, 마당 한 켠에 조그맣게 피어 있던 채송화도 모두 우리의 정서를 키우고 자라나게 해서 오늘의 내가 숨쉬게 만들어 준 것들이 아닌가? 요즘에는 그림도 블록체인의 NFT로 만드니, AI로 그리니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항상 새로운 시대가 오고 오래된 시대가 지나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래도 손의 떨림이나 터치가 묻어나고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그림이 내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가을에도 작업실 마당에는 수십년의 세월을 지켜본 모과나무가 노란 열매를 주렁 주렁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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