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매미소리나 실컷, 바람소리나 실컷”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매미소리나 실컷, 바람소리나 실컷”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승인 2024-08-05 14:39
  • 신문게재 2024-08-06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조훈성 연극평론가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견뎌본다. 선풍기를 돌리며 창문을 열었더니 그간 여름나기 위해 얼마나 참았는지 매미울음 소리가 귀청을 친다. 마감할 게 있는데 끝내지 못하는 게 매미소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거절 못하고 말한 것은 지켜야 된다는 우유부단한 내 성격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암튼 올해는 벌이도 시원찮은데 유난히 맡은 게 많아서 스트레스가 많다. 딸아이가 그런 아빠 얼굴에서 힘든 기색을 봤는지, "아빤, 시인이잖아. 힘내."라는 뜬금없는 응원을 한다. 녀석이 '시인'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싶으면서 과연 '시인'은 정말 힘이 센지 애써 미소를 지어본다.

극단 헤르메스의 <목소리>(장콕토 작, 서경동 각색, 연출/7.19~7.21/소극장고도)를 이전년도에 이어 다시 본다. 연극은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단 한 번도 같은 작품이 있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인극인데, 그만큼 배우와 연출의 교감이 밀접할 수밖에 없다. 극중 인물은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채, '전화기' 하나로 이별의 대화와 그 수용의 감정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 그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에 대한 집착, 다양한 감정 곡선의 표현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발견한다. 단지 남녀의 사랑, 이별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 본연의 '결핍'과 '불안'을 이 무대 위, 장치된 사각의 균열과 산개된 장식품들 속에 소통 부재의 이 공간에 있는 단 한 명의 인물을 통해 이를 발견코자 한 것이다. 이제 모노드라마의 상연은 과거처럼 낭만적인 흥행에 따라 장기공연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일찍 무대가 바뀐다. 배우가 온전히 긴 호흡으로 캐릭터를 체득하기 전에 아쉽게도 짧은 공연으로 퇴장하고 만다. 무대 위 그 늘어지고 꼬인 긴- 긴- 전화선의 길이만큼 상연이 거듭해진다면, 아마 그 연극은 세계 제일의 무대가 될 수 있을 텐데. 어디 연극뿐이랴, 극장을 나서자마자 이방인이 되고만 나는 교감을 위한 시간 따윈 우리에게 먼 이야기라는 것을 금세 깨닫는다.

연극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극단 아라리에서 <동물농장>(엄태훈 각색, 연출/7.25~7.28/이음아트홀)을 공연했다.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의 풍자우화소설을 연극으로 만든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테면 소설보다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원작이 사회주의 공동체의 변질을 다루었다면, 오늘의 연극은 어떤 공동체의 오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우화 속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아마도 이 작품은 이 사회 또 다른 '독재'와 '부패'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극중 문해할 수 있는 동물의 구별이나, 독재자 나폴레옹의 '개'들의 공격이라든지, 깨어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보루라든지 하는 동시대적인 감각을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부실한 공동체 사회, 이 <동물농장>이 얼마나 사회비판적으로 시의성 있게 접근할 만한지 다시 곱씹게 된다. 내일의 무대와 연극은 더 나아지겠지만, 우리의 세계는 과연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부실한 사회, 비판적 사회관점이 없는 맹목적 지지자의 일면이나 선정적 구호와 가짜 뉴스가 넘치는 이 사회에 다시 '동물농장'을 봐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서울 '나온시어터'에서 '팀 티티새'의 <건널목교차로>(조승혜 작.연출/7.17~7.21)를 봤다. 서울 페미니즘연극제는 6회째를 맞는데도 이제야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 것이다. 내가 편향되긴 했나보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공감을 하면서 갇혔을 때는 돌파해야 된다는 연출의 말을 옮겨보지 않을 수 없다. "경적을 울려대는 온갖 자동차들과 신호등, 울타리, 표지판. 길 위에는 우리를 막아 세우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방해할지언정 우리는 꿋꿋이 걷습니다. 저 길 건너편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라는 건널목 교차로의 메시지는 상실과 소외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로 물들어 간다. '인간'은 그 얼마나 섬세하게 이해되고 바라봐야 할 존재인가를 새삼 알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온통 이 세계의 인간, 이 문제투성이지 않은가. 세계는 이렇게 건너가고, 연결하고 또 건너가고, 연결하고 이렇게 이어지면서 만들어진다. 녀석이 학원 마치고 나오려면 이제 15분 남았네. 15분 동안, 매미소리나 실컷, 바람소리나 실컷 들어야겠다.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