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잔소리의 비용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잔소리의 비용

김화준 원장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민들레의원)

  • 승인 2024-08-20 16:47
  • 신문게재 2024-08-21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화준 원장
김화준 원장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으로 의원에 때맞추어 오시는 분들이 많다. 어느 정도 조절되는 분들은 진료하는데 몇 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 중에는 조절이 안 되어서 약을 바꾸거나, 추가하거나,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빨리 약을 타서 진료실을 나가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이것저것 질문을 준비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실제 환자가 많이 밀려 있지 않으면 질문에 답도 해드리고, 만성질환 관련 조언이나 교육도 해드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대기하는 환자분들이 많으면 조바심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병원 운영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환자를 매일 봐야한다.

그럼 왜 다수의 환자를 봐야 할까?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의원급(동네병원) 기준 2025년 외래 초진료 및 재진료는 각각 17,950원, 12,830원이다. 만성질환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재진이기 때문에 재진료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즉, 만성질환자 1명의 처방전 당 12,830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1분 만에 처방전을 줘도 12,830원이고, 20~30분 상담을 해도 12,830원이다. 만약 어떤 의사가 만성질환자 상담을 위해서, 잔소리를 제대로 하려고 동네에 의원을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20분에 한 명씩 환자를 진료하면, 하루 8시간 기준으로 24명 정도를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30명 정도 본다고 가정하면, 순수하게 진료로 번 금액은 384,000원이다. 여기에 초진 환자도 있을 수 있고, 관련 검사를 한다고 하면 하루 매출은 대략 500,000원 정도가 될 것이다.



한 달 기준 25일을 일한다고 하면, 대략 월 12,500,000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병원 임대료, 간호사 월급 (2인 기준, 4대 보험 포함), 세금, 운영비 (전기, 수도세, 의료기기 및 전자 챠트 같은 관련 소프트웨어 사용료 등등)을 제외하면 의사가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월 500만 원 넘기 힘들다. 그리고 이건 그나마 환자를 꽉 채울 때 이야기다. 만약 하루에 30명을 채우지 못한다면 수익은 더 줄어들 것이다. 운영면에서 보자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그럼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중간에 만성질환 이외의 환자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물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이다. 단, 이렇게 하면 예약제로 할 수 없고, 오는 환자를 순서대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몰리는 시간에 몰리고, 없는 시간에는 없다. 환절기 감기 환자가 밖에 10명 대기하고 있는데 만성질환자를 위해 20~30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결국 원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1분 안에, 5분 안에 처방전을 발급하게 된다.

또 다른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럼 20~30분 상담 및 진료에 대해서 비급여로 일정 금액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과연 의사의 잔소리를 듣기 위해서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병원에 올 환자들이 얼마나 될까? 의사가 이런 부담을 안고 개업하기는 어렵다.

고령화, 늘어나는 기대여명, 식생활 습관 및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환자들의 삶의 질과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는 늘어나는 만성질환자를 관리하고,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방안 중 하나다. 현재 먹고 있는 약은 어떤 종류인지, 환자의 건강 상태는 어떠 한지, 식생활 습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등 설명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현재의 수가제도,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아직 뾰족한 해답을 못 찾고 있다.

최근에는 '가치기반 수가제도 시범사업'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 또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누군가는 선행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품은 많이 들어가고, 이익은 너무 작다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결정을 선택하는 의사는 소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을 꺼낸 필자가 먼저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자신은 없다. 환자를 위한 잔소리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