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높임말 남용 현상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높임말 남용 현상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4-10-20 10:37
  • 수정 2024-11-13 17:25
  • 신문게재 2024-10-21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한국 사회에서 높임말은 오랫동안 예의와 존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에 따라 격식을 갖추고, 언어로 존중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높임말이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오히려 소통의 자연스러움과 명확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법률가로서 법정과 법적 문서에서의 언어 사용을 주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현상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타인을 지칭할 때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인 높임 표현을 사용하는 흔하다. 쉬운 예로,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버지가 갔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가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듣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아리송하지 않을까. 심지어 불만을 표현하는 상황에서도 그 대상에 대한 높임 표현은 빠지지 않는다. '매장 셀러님이 너무 불친절하셨어요' 이런 식이다. '매장 직원이 너무 불친절했어요'라고 하면 충분할 텐데, 말하는 화자 자신은 굉장히 예의 바르고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임을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대상에 대한 높임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높임 표현은 오히려 언어의 자연스러움을 저해한다 할 것이다.

높임말의 과도한 사용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두드러진다.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서 반말이 흔했지만, 요즘은 "~~님", "~~하셨나요?" 같은 존칭이 기본 매너로 자리 잡았다. 익명성을 가진 온라인 대화조차 존칭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높임 표현이 빠지기라도 하면 자칫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다. 상호 간의 존중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예의 표현은 오히려 형식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 듯하다.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도 높임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가게 사장님이 ~~ 하셨어요"라는 식인데, 대화하는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높임 표현을 굳이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표현은 특히 공적 대화에서는 불필요하게 형식적이고 과장된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최근 공적 문서나 법률 서면에서도 과도한 높임 표현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 "귀하께서 제출하신 서류", "원고의 부모님께서 ~~ 하셨습니다" 같은 문구는 법적 문서의 명확성과 간결성을 훼손할 수 있다. 법률 문서는 사실 전달과 법적 주장을 위해 명료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높임말은 문장이 전달하는 내용의 명료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감정과 관념을 게재시킨다.

변호사로서 최근 흥미롭게 관찰한 사실이 있는데, 법정에서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의뢰인을 지나치게 높이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가 재판 중에 '원고께서는'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역시 어색하다. 변호사는 원고나 피고의 대리인으로서 법정 내에서는 원고나 피고 자신과 동일하다. 그런데 타자화해 굳이 높임 표현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맞지 않는 언어 사용인가. 특히 서면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면 법률 문서의 형식성과 명료성에도 어긋난다. 그럼에도 상대를 존중한다는 마음이 법정에서도 법률 서면에서도 넘쳐 흐른다. 법정은 감정적인 존중을 드러내기보다 법적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할 자리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시대가 바뀌면서 상호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화되었고, 높임말이 자연스럽게 보편화됐다.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존칭 사용이 필수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무리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소통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형식적 언어가 남발되면서 오히려 의사소통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존중과 예의를 표현하는 언어는 상황과 관계의 맥락을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언어의 격식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의사소통을 방해하거나 본래의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높임말이 남용되지 않고, 그 본래 의미를 충실히 담아내는 방향으로 언어사용이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대한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후폭풍… 보직교수 5명 일괄 사표
  2. 과기부 소관 공공기관 일부 통폐합…국립과학재단 신설
  3. 충남대·공주대 통합 멈췄지만 끝 아니다… 연말까지 재논의 여지
  4.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5. 대전 자치구별 아파트 평균 매매가 어디가 높나
  1.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규제 충돌 넘어선 24년 동행… 충청 유역공동체로 이어진 물길
  2. 충남교육청, 추석 명절 전 특별 공직 감찰 실시
  3.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24년 거버넌스의 한계… 충청의 물, 이제 유역 전체를 보자
  4. 대전세종충남혈액원, 충남대서 생명나눔 헌혈 캠페인 펼쳐
  5. 위성 15기 싣고 우주 향하는 누리호 5차… 대전 기술력 '시험대'

헤드라인 뉴스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16일 대전을 찾아 산적한 지역 현안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공공기관 제2차 지방 이전, 대전 의료원 건립 등 허태정 대전시장과 지역 여권이 요청한 미래성장 동력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며 충청 민심 껴안기에 나섰다. 이 같은 행보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정책 및 예산권을 가진 집권 여당의 힘을 과시하면서 지역 밥상머리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이날 대전시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전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요구와 관련해 "지방의 의견을..

대전서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는 어디?
대전서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는 어디?

대전지역에서 최근 1년 새 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서구 둔산동 한마루아파트로 나타났다.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구 둔산동 한마루아파트 전용면적 101.94㎡는 지난해 9월 9억 1000만 원에서 올해 9월 12억 원으로 2억 9000만 원 상승했다. 동일 단지·동일 전용면적이라도 층수 등에 따라 매매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같은 면적의 실거래가는 1년 새 3억 원가량 차이를 보였다. 상승액 2위는 서구 탄방동 공작한양 84.90㎡로 지난해 9월 4억 4000만 원에서 올해 9월 6억 7000만..

‘2030년 짐 싸는’ 국정자원 본원…충남·세종·대전 유치 ‘3파전’
‘2030년 짐 싸는’ 국정자원 본원…충남·세종·대전 유치 ‘3파전’

지난해 화재 발생 이후 본원 이전 절차가 본격화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두고 충청권 지자체 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2030년까지 기존 대전 본원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충남도와 세종시, 대전시가 저마다의 명분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16일 충청권 각 자치단체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대전 유성구 화암동에 위치한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2030년까지 전면 폐쇄된 뒤 새로운 장소로 이전·재설립될 예정이다. 적절한 이전 부지를 발굴하기 위한 정보화전략계획 용역은 내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며, 이에 맞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