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치솟은 아파트에 더 깊어지는 그늘…개발서 빠진 노후주거 '현안으로'

[WHY이슈현장]치솟은 아파트에 더 깊어지는 그늘…개발서 빠진 노후주거 '현안으로'

재개발·재건축 때 일부구역 제척하고 높은 용적률
노후주택·상가 그대로 남긴 채 고밀도 새 주거개발
향후 개발 어려운 사각지대 양상 주거격차 문제도
경기둔화 영향 사업성 있는 곳 비정형 재개발 추세

  • 승인 2024-10-31 16:56
  • 수정 2024-11-01 09:19
  • 신문게재 2024-11-01 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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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은행동의 한 노후주거지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며 격차를 실감케하고 있다. 주거정비사업에 일부 지역을 제척해 남은 노후 세대와 주민 위화감이 주택관리에 새로운 현안이 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산이 높은 만큼 골짜기는 깊어진다고 했던가, 대전에서도 부쩍 높아진 아파트만큼 그 아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시행할 때 수익과 사업성이 기대되는 핵심 구역에서만 노후주택을 헐고 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새 아파트 옆에 낡고 노후된 주택과 상가가 그대로 남은 현장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주민들은 되살릴 수 없는 죽은 건물이 되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 후 남은 원주민의 구김살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49층 옆 2층 노후건물 '덩그러니'

대전 중구 은행동의 한 골목을 걷다 보면 49층까지 솟은 아파트 옆에 2층의 노후 상가건물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곳에 닿게 된다. 대전천을 끼고 용적률 700%대의 고밀도 재개발을 진행 중인 이곳은 과거 모텔촌을 이루던 노후 상업지와 단독 주택지이었다.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재건축과 재개발을 추진한 곳으로, 일부는 새 아파트에 최근 입주가 시작돼 주민들이 분주하고 오가고 있다. 반면, 바로 앞 노후 상가건물은 대부분의 점포가 셔터를 내린 채 오랜 침묵에 잠겨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드러난 시멘트부터 나무로 덧댄 출입구, 어지럽게 얽힌 전기줄이 재건축을 기다리던 노후 건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해당 건물을 둘러서 998세대 아파트 1차 개발을 시작으로 743세대 2차 개발 그리고 998세대 3차 개발이 동시다발 이뤄지고 있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의 개발도 2027년 준공을 목표로 851세대 개발되는 등 대종로네거리에서 중촌네거리 한 블록 9만5000㎡에서 4008세대가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노후 상가와 주택 10여 채가 있는 작은 블록(4000㎡)은 재개발·재건축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오래된 건물이 그대로 남게 됐다.

국숫집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이 건물 자리에 공원을 짓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쏙 들어갔고,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이 8~9세대밖에 안 되다 보니 항의도 해봤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감자탕집을 개업한 또 다른 주민도 "저희 소유 점포인데 재개발 때 동의서를 받으러 오거나 논의한 기억은 없으나, 노후건물이더라도 상가이다 보니 보상 문제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라며 "저희는 2층에서 높아야 5층 높이인데 작은 골목 사이로 49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연속 들어설 것을 생각하면 닭장 속에 갇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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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촌동의 신규 아파트 개발지 앞에 빈땅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텃밭과 관리 안되는 창고가 혼재하며 난개발이 우려된다.  (사진=임병안 기자)
▲노후주택 한 줄 남겨놓은 재개발

장소를 옮겨 서구 도마동 서부교육지원청을 감싸고 이뤄지는 재개발에서도 노후주거지 일부를 사업구역에서 배제해 주민들이 주거열악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도마네거리 인근의 이곳에서는 오랜 주택가를 철거하고 1558세대 아파트를 개발하는 중으로 서부교육지원청 서측 담장에 있는 노후주택 9세대를 사업구역에서 배제했다. 또 북쪽 담장에서도 주택과 상가 22세대가 일렬로 남겨진 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작은 골목을 마주하던 쌍둥이 같았던 2층 주택들이 사라진 자리에 최고 35층 11개 동이 들어섰고, 그 골목은 단지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되어 많은 차량이 오가게 될 전망이다. 단독주택 한 채 너비의 폭만큼 'ㄱ'자 형태로 재개발구역에서 제척해 남겨둠으로써 이곳은 주택을 새롭게 짓기도 어렵고, 또 다른 재개발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규모 정비사업의 사각지대로 남을 것으로 우려된다.

17년간 거주한 김모(58)씨는 "우리 집은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인데 재개발 구역에서 배제돼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출입구에서 지내는 꼴이 되고 있다"라며 "몇 세대 안 돼 목소리도 못 내고 앞으로 새로 지을 수도 없는 '죽은 건물'이라고 남은 주민들 스스로 말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중구 중촌동에서도 재개발에서 제외되어 남겨진 토지가 덩그러니 남겨져 치안 위험까지 가중하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입주한 이곳은 한때 무릉마을이라고 불리며 유등천 건너 둔산동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 1997년부터 개발 시도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토지확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으며 나대지로 남아 있다가 일부 부지에 820세대 아파트를 건설했으나 여전히 여러 필지가 개발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개발에서 제외된 토지는 지금까지 텃밭으로 쓰이고, 최근에는 정체불명의 창고건물이 지어져 출입구에 문도 없이 방치되면서 흉물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대전세종연구원 정경석 연구위원은 "일부 필지를 재개발이나 재건축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사업성을 높이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으나, 비정형 개발로 정비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문제가 있다"라며 "경기침체와 건설원가 증가로 사업성 저하와 더불어 신규주택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쟁점 사이에서 공익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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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전시 재개발·재건축 현황표
▲도시정비사업 111곳 둔산동의 1.7배 면적

대전은 100% 미만으로 떨어진 주택보급률과 33%에 이르는 노후주택 비율 탓에 적절한 신규주택 공급이 필요한 곳이면서 도시정비사업 쏠린 현상이 우려되는 곳이다. 대전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과 재건축의 도시정비사업은 총 111개 사업으로 재개발 85개 구역, 재건축 26개 구역에 이른다. 현재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 구역 중 사업시행인가 이상 추진 지역은 28곳으로 59곳은 입안 제안 중이거나 구역지정 단계 또는 추진위 및 조합 설립 단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치구별로 보면, 중구 45곳으로 가장 많고, 서구 24곳, 동구 23곳, 대덕구 15곳, 유성구 4곳 등이다. 이들 도시정비사업 구역의 면적을 모두 더하면 총 7.6㎢에 달하는데 대전 둔산 1·2·3동 전체면적(4.2㎢)의 1.7배 규모에 모든 사업에서 세대가 공급되면 12만1820세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특히, 대전은 전체 주택 중 건축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이 33%에 달하고, 그중 동구와 중구의 노후주택 비율은 57%와 55%로 대전 전체 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주택보급률 역시 최근 5년 사이 101.6%에서 97.2%까지 떨어져 적절한 주택물량 확보가 필요한 곳이다. 때문에 일부 구역에서는 정비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노후 주택가에 대한 개발지역 제척을 승인하고 있으나, 검토 과정에서 주민들의 재개발 반대 사실을 확인할 수단이 없고, 동일 구역 중 일부 필지 개발에 따른 잔여 사각지대에 주거환경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정재호 목원대 부동산금융보험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 블록 전체를 포함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이뤄져야 하는 게 맞으나 현실적 사업성 등의 문제에서 최대한 공익적 차원을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재개발과 노후주택이 한 곳에 공존하는 상황은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역시 사전에 지자체 차원의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안·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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