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승인 2024-12-09 10:25
  • 신문게재 2024-12-10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문학계,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숙원이었던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 노벨 위원회가 평화상이라든가 문학상을 수여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인류의 평화라든가 어떤 보편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들을 선정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게 한 주요 작품들인데, 여기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펼쳐졌던 아픈 역사들이다. 제주 4.3사건과 광주 민주화 운동 등등인데, 작품의 주제는 거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과 그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2024년도 노벨 문학상 위원회가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생명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지금 지구상에는 몇몇 전쟁들이 무고한 목숨을 담보로 진행되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중시해왔던 노벨 위원회가 이 살육의 현장을 외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가 한강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직접 체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아픈 현장을 외면할 수 없어서, 아니 당연히 참여해야만 하는 의무감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작가는 그 현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학적 장치를 고안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꿈의 형식이다. 그러니까 꿈은 작가가 과거의 현실과 현재의 감성적 볼펜이 만나는 주요 통로인 셈이다.

작가는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접목된 과거의 역사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거기서 작가는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을 위해 저질렀던 무자비한 학살,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상처를, 그 트라우마를 분수처럼 뽑아낸다. 상처란 그것의 드러냄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치유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피해자가 생겨나면 그를 적극 보호하게 된다. 그래서 2차, 3차 가해니 하는 말의 성찬을 쏟아내며 가해자의 모습이나 그의 입장에 선 담론들을 적극 지우고자 한다. 그런데 제주 4.3 사건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런 보호 테두리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계속된 상처들이 정치적 무의식(political unconsciousness)이 되어 켜켜이 쌓여 왔다. 결코 환기하고 싶지 않은 가해자의 얼굴을 통치자라는 이름으로 7년여를 소름돋게 보았거니와 그 이후로도 그 잔영은 삭제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었다. 어느 신문 기자가 이렇게 쓴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가해자는 정치는 비교적 잘했다"는 대선 후보의 말을 전하면서, 이를 두고 "보수의 표심을 자극했다"고 했다. 선거 또한 이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그렇다면 보수란 반대편의 사람들이 학살되고, 그리하여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아무렇게나 짓밟혀도 좋다는 뜻인가. 이런 망발이 난무할 때 관련 단체 외 어느 집단도 이를 2차, 3차 가해라고 눈을 부릅뜨고 항의한 적이 있는가. 피해자들의 무의식에 쌓이고 쌓인 분노가 '소년'으로 환생하여 이 부당한 현실에 대해 항변한 것이 '소년이 온다'이다.

한강은 이런 야만적인 현실에 펜으로써 저항한 것이고, 노벨 위원회는 작가의 그런 저항 정신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문명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원시적 야만이 존재한다. "개는 패서 죽여야 맛이 있다"는 근거없는 통설에 기대어 개가 죽을 때까지 차에 매달고 달리는 야만과, '다름이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려는 군사 문화의 야만('채식주의자'). 그리고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이념이나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포기되는 야만의 현장이 목격된다('작별하지 않는다').

노벨위원회는 한강의 작품을 통해서 이 부당한 사건들이 그들만의 것에서 그치지 않는 것임을 알리고자 했다. 차단된 바위섬이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사의 공간으로 거듭 태어났기에 이제 한강은,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이 아픈 역사들과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는, 광주는, 호남은 이제 더이상 울지 않아도 된다. 생명 모독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훼손이 그저 남의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이런 단면이야말로 우리가 서구의 문명국과 대등한 위치로 편입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 땅의 이런 야만적 현실을 한강의 작품을 통해서 경고한 것, 그것이 이번 노벨 문학상이 주는 구경적 의의이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벼랑 끝 대전충남 통합 충청출신 與野 대표 '빅딜'만 남았다
  2. 빨라지는 6·3 지방선거 시계… 여야 정당 & 후보자 '잰걸음'
  3. [주말사건사고] 대전·충남서 화재·산업재해 잇따라… 보령 앞바다 침몰어선 수색도 나흘째
  4. 해방기 대전 문학 기록 ‘동백’ 7집 발견…27일 테미문학관 개관과 함께 공개
  5. [월요논단] 충청권 희생시켜 수도권 살리려는 한전 송전선로 철회하라
  1. 항공·관광·고교 교육까지…충청권 대학 지산학관 협력 봇물
  2. 대전시 무형유산 초고장·국화주 신규 보유자 탄생
  3. [건강]팔 안 들리는 '광범위 회전근개 파열' 어깨 관절 구조 바꾸는 치환술
  4. '수학문화를 과학기술 대중화의 새로운 문화로' 수리연 정책 포럼 성료
  5. [건강]반복되는 사레, 사망 초래할 수 있는 연하장애의 위험신호

헤드라인 뉴스


벼랑 끝 행정통합…금강벨트 시도지사 경선링도 직격탄

벼랑 끝 행정통합…금강벨트 시도지사 경선링도 직격탄

벼랑 끝에 몰린 대전·충남 행정통합으로 6.3 지방선거 충청권 광역단체장 경선링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는 타 시도와 달리 충청권은 차갑게 식은 지 오래며, 국민의힘도 김태흠 충남지사가 후보등록을 미루는 등 후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경선 일정 지연 등이 현실화 될 경우 후보자 및 공약 검증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고스란히 지역 주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지방선거를 3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들어섰지만, 대전·충..

국내 증시 `패닉`에…국내 투자자 불안 심리 `증폭`
국내 증시 '패닉'에…국내 투자자 불안 심리 '증폭'

미국과 이란 전쟁 정세의 악화로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인공지능(AI) 관련 불안 심리가 함께 더해지면서 9일 코스피가 6% 가까이 급락했다. 최근까지 6000선 위를 웃돌던 코스피 지수도 어느새 이날 5300선을 내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장중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며 코스피 전 종목의 매매 거래가 일시 중단됐다. 코스닥도 5% 안팎 급락하며 1100선을 내줬다.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333.00포인트(5.96%) 내린 5251.87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19.50포인트(5.72%) 하락한 5265...

대전선관위, ‘꿈돌이 선거택시’ 운행…4월부터 2000대 지선 홍보나서
대전선관위, ‘꿈돌이 선거택시’ 운행…4월부터 2000대 지선 홍보나서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홍보를 위해 지역 가맹택시인 '꿈돌이택시'를 활용한 '꿈돌이 선거택시'를 운행키로 했다. 대전선관위는 9일 선관위 대회의실에서 애니콜모빌리티(주)와 '꿈돌이 선거택시'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꿈돌이택시(꿈T)'는 대전시 공식 캐릭터 '꿈씨패밀리'가 UFO에 탑승한 디자인의 차량표시등을 부착한 지역형 가맹택시로, 애니콜모빌리티가 대전시와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협약식에서는 양 기관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꿈돌이택시에 직접 탑승해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퍼포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