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현장검증의 추억 (1)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현장검증의 추억 (1)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승인 2025-02-04 16:37
  • 신문게재 2025-02-05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윤인섭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소덕동 이야기' 편에는 현장검증 장면이 나온다. 현장검증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검증이라 함은 법관이 시각, 청각 등 오관의 작용에 의해 직접적으로 사물의 성상, 현상을 검사하는 것이다. 예컨대, 토지의 경계확정사건이나 건물인도청사건 및 토지인도청구 사건에서 계쟁토지나 경계선 상황을 본다든지, 교통사고 사건에서 사고현장 상황을 보든 등을 말한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살인사건의 현장검증 장면을 많이 접한다.

이를 보며 법무관 때인 2009년 봄에 다슬기 불법채취 사건에서 현장검증을 갔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대전·충남과 서울에만 살던 필자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관 근무지로 남도의 낭만을 그리며 전남 장흥을 지원하였는데, 주임님으로부터 부임 전날 전화를 받았다. "너무 죄송한데 첫 부임하시는 길에 새벽 4시에 탐진강에서 형사사건 현장검증이 있으니 첫 출근 전에 반드시 늦지 않게 탐진강변에 출석하라. 법무관님이 자가용이 있으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이었다. 이때 받은 지표를 네비게이션에 쳐봐도 장흥읍에서도 한참을 더 탐진강 지류를 따라 들어가야 하는 정체불명의 장소였다. 오밤중에 밤을 새워 차를 몰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고속도로를 지나 광주광역시의 불빛을 잠시 지나쳐 다시 칠흑 같은 어둠만 있고 휴대폰조차 안 터지는 구간을 지나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장흥읍에 다다랐지만 아직 관사도 몰라서 머물 곳도 없고 머물 시간도 없이 네비를 따라 그 좌표에 다다랐다. 포장도 안 된 천변의 강둑을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물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좌표에 도달하였는데 아무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가 무섭다기보다는 혹시 내가 잘못 찾아왔으면 나 때문에 현장검증이 무산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고, 어디다 전화를 걸어서 맞게 와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어서 한참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곧이어 필자의 피고인도 등장했다. 피고인은 상당히 결연한 태도였는데, 의리!, 남자답게!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분이었다. 아직 기록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내용도 영문도 몰랐지만, 사법연수생 시절 첫 국선 변호 사건에서도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피고인에게 무죄를 받아준 몸이라며 너무 걱정 말라고 피고인에게 호기를 부렸던 기억이 난다. 10분 정도 지났었나, 피고인과 둘이서 어색하게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을 무렵, 멀리서 물안개 사이로 차량 불빛이 하나 보이더니 곧이어 판사님, 참여관님, 실무관님, 운전주임님 등 법원 측 분들이 내렸다. 마치 정글 한복판에서 잠복하다 조용히 아군들을 조우한 반가운 상황처럼 밤안개 속에서 기분이 묘했다. 무변촌, 즉 변호사가 없는 동네에서 유일한 변호사로서 유일한 형사단독판사님을 앞으로 1년 동안 뵈어야 하는데 첫 인사는 그렇게 강둑에서 나누게 되었다. 다들 하품을 하며 안개를 쳐다보고 있는데, 검사님은 왜 안 오시냐고 다들 발을 구르던 중 드디어 검사님이 도착하셨다. 마찬가지로 1년간 뵙게 될, 장흥 유일의 공판검사님. 마찬가지로 강둑에서 인사.



피고인은 모두 3명이었다. 갑은 다슬기 채취 허가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다슬기를 채취했다는 이유로 내수면어업법위반죄로 기소되었다. 을은 갑이 범행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범인도피죄로 기소되었다. 병은 을이 그러한 진술을 하도록 교사하였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도피교사죄 등으로 기소되었다. 자기 혼자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병의 변호인이었다.

피고인에게 다슬기 채취에 대해 물었다. 얼마나 돈이 되기에 재판까지 받으면서 계속하냐고. 그런데 우리가 다슬기해장국에서 접하는 그 다슬기, 생각보다 비쌌다. 작은 바가지 하나 분량에 가격이 상당한 데다가 그리고 밤새 작업하면 한 자루 가득 나오니...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경제사범의 경우 범행동기를 차단할 정도의 양형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지를 두고 그 후로도 각종 매체나 세미나에서는 특히 사기 범행으로 인한 이득을 환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내용으로 많이 다뤄지고 있다.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시, '김해맛집' 82곳 지정 확대...지역 외식산업 경쟁력 강화
  2. 인천 남동구 장승백이 전통시장 새단장 본격화
  3. 환자 목부위 침 시술 한의사, 환자 척수손상 금고형 선고
  4. 대전서 교통사고로 올해 54명 사망…전년대비 2배 증가 대책 추진
  5. 인문정신 속의 정치와 리더십
  1. 고등학생 70% "고교학점제 선택에 학원·컨설팅 필요"… 미이수학생 낙인 인식도
  2. 대학 라이즈 사업 초광역 개편 가능성에 지역대학 기대·우려 공존
  3. 대전 횡단보도 건너던 50대 승합차 치여 숨져
  4. 대전·충남 우수 법관 13명 공통점은? '경청·존중·공정' 키워드 3개
  5. [홍석환의 3분 경영] 가을 비

헤드라인 뉴스


1천만원 이상 고액‧상습체납 대전 247명, 94.6억원 달해

1천만원 이상 고액‧상습체납 대전 247명, 94.6억원 달해

대전지역에 1000만원 이상 고액·상습 체납자 247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대전시는 19일 지방세 및 지방행정제제·부과금 체납액이 각 1000만 원 이상인 고액·상습체납자의 명단을 시 누리집 및 위택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는 올해 1월 1일 기준 체납 발생일부터 1년이 지난 1000만 원 이상 체납자이며 지난 10월까지 자진 납부 및 소명 기회를 부여한 후 지방세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공개된 정보는 체납자의 성명·상호(법인명), 나이, 직업, 주소, 체납세목, 납부기한 및 체납요지 등이며..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개막이 5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섬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예술감독과 사무총장, 민간조직위원장 등을 잇따라 선임하며 추진 체계를 재정비하고, 전시 기본계획을 마련하며 성공 개최를 위한 시동을 켰다. 19일 조직위에 따르면, 도와 보령시가 주최하는 제1회 섬비엔날레가 2027년 4월 3일부터 5월 30일까지 2개월 간 열린다. '움직이는 섬 : 사건의 수평선을 넘어'를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는 원산도와 고대도 일원에서 펼쳐진다. 2027년 두 개 섬에서의 행사 이후에는 2029년 3개 섬에서, 2031년에..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가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을 확대하는 등 지역 건설업체 살리기에 나선다. 정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지방공사 지역 업체 참여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지역 건설사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지방공사는 지역 업체가 최대한 수주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우선 정부는 공공기관(88억 원 미만)과 지자체(100억 원 미만)의 지역제한경쟁입찰 기준을 150억 원 미만까지 확..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