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아주 보통의 하루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아주 보통의 하루

고영실 예산 삽교중 교사

  • 승인 2025-04-17 16:43
  • 신문게재 2025-04-18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20250417_예산 삽교중 교사 고영실
고영실 예산 삽교중 교사
'우와~ 어떤 부지런쟁이 선생님이 벌써 달력을 정리해 놓으셨네? 오늘부턴 4월인 거야? 이렇게 추운데 벌써 4월이라니. 수행평가 도서는 도착을 안 했네? 어쩐지 오늘 수업 도서실로 오라는 말을 미리 하고 싶지 않더라니. 오후에는 가져다 주시겠지? 오늘 수업은 1, 2, 3학년이네? 그럼 1학년 수업 가면서 오늘 2, 3학년도 교실 수업이라고 안내해야겠다. 아차차! 1학년 주제 선택 수업자료 출력해야지.'

방학이라 수업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2월, 3월을 보내고 맞이한 4월도 첫날부터 정신이 없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작년에는 아이들이 반을 바꿔서 들어와 앉아 있기도 했었던 터다. 올해는 학년마다 한 학급뿐이라 반이 섞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우절은 만우절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할 만큼이나 아주 고요하게 1학년 수업이 끝났다. 하긴, 국어 선생님에게나 '슬기롭게 고사성어(故事成語)'지 아이들에게도 고사성어 이야기가 슬기로울 리가 있나. 주제 선택 주제가 이게 뭐냐고 짜증내지 않고 한자 쓰기, 단어 뜻 쓰기 학습을 따라와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꾀가 생긴 선생님은 학습지에서 아이들이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을 교묘하게 늘려가고 있지 않은가. 양면 가득 학습지를 채우느라 힘이 드는 듯 팔을 두드려 대면서도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얘들아, 내년에는 주제 선택 다른 걸로 바꿀까?" 물어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자료를 이번 한 번만 쓰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말을 꾹 참는다. '얘들아, 미안. 하지만 선생님도 자료 만드느라 힘들단다.'

2교시 수업 시간. 당당하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얘들아, 안녕? 오늘 수행평가 아닌 것 알지?", "어, 저희 국어 수업 아닌데요?", "(요 녀석들, 만우절이라고 장난치는구나! 누가 속을 줄 알고?) 왜~애? 난 시간표 안 바꿨는데?", "원래 국어 수업 3교신데요?", "정말? 쌤이 시간표 잘못 봤나?", "우하하~"

휴대전화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 둔 시간표를 확인한다. 역시나,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1, 2, 3학년은 어제 시간표다. 오늘은 1, 3, 2학년.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낼 수는 없지.

"그러네? 국어가 3교시네? 근데 지금 국어 시간 맞아. 수업 바뀌었어.", "정말요?", "뻥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은 했지만 교실을 나오는 뒤통수가 간지럽다. 아, 이놈의 정신머리. 아니, 눈이 문제인가?

3교시. 이번엔 진짜 2학년 수업이다. 복도를 걸어오는 머리만 보여도 냅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이들이다. 귀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며 교실을 들어서는 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앞을 보고 앉은 아이, 뒤돌아 앉은 아이, 사과머리를 묶은 남학생들까지. "어제는 AI 버전으로 책을 읽더니 오늘은 사과머리야? 너무 귀여운 것 아니야?" "엥? 귀여워요?" "진수 좀 보세요~, 진수는 어디가 앞이게~요?" "에이, 돌아앉아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얼굴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잖아?"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선생님, 수업해요!" 한다. "그럼, 수업해야지. 근데 그러고 수업할 거야?" "만우절이잖아요~. 아까 '뻥이야'에 대한 소심한 복수죠. 저희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하하. 근데 얘들아, 어쩌면 우리 1학기 1권 읽기 책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까 서점에서 전화왔는데, 일시품절이라 주문을 할 수가 없대.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는 할 건데, 안되면 바꿔야 할 것 같아." "아… 아쉽다. 근데 사장님도 만우절 장난치시는 것 아니예요?" "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임용 후 다섯 번째 학교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만우절이다. 앞으로 몇 번의 만우절을 아이들과 보내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만우절에는 올해의 만우절 이야기가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리고 소망해 본다. 앞으로의 하루하루도, 오늘처럼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모두에게 그런 날들이기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