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실용서로 읽는 조선』의 '양화소록'편에 보면, 화훼를 키우는 법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꽃을 감상하고 즐기는 법이 소개되어있다. 강희안이 "초봄이 되어 꽃이 피면 등불을 밝히고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잎 그림자가 벽에 도장처럼 찍힌다. 아름다워 즐길 만하다"고 그림자 완상법을 적어 놓았다. 김안로는 "매화를 등불에 비춰 비스듬한 가지의 성긴 그림자가 또렷이 벽에 어리는 것을 함께 즐겼고, 그림에 뛰어난 아들 김희(金禧)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했다" 한다. 정약용은 국화로 그림자놀이를 한다. 빈방에 국화를 놓고, 벽 사이 적절한 곳에 촛불을 밝힌다. 국화의 꽃과 잎, 줄기가 거리에 따라 농담의 차이를 보이면서 한 편의 수묵화로 보이게 연출한다. 선비들은 매화음이란 술자리를 마련, 한겨울 매화가 피면 매화 넣어둔 감실에 구멍을 내고 운모로 막은 다음 이를 통해 그 안에 핀 매화를 보았다. 큰 백자 사발에 맑은 물을 담아 문밖에 내놓고 얼린 다음, 그 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촛불을 넣어 불 밝혀 품위를 높이기도 하였다. 환상적인 매화 감상이다. 유리잔에 촛불을 켜, 연꽃 사이에 띄워, 불빛이 유리잔에 비치게 하고, 술잔이 꽃을 비춰, 꽃빛과 물빛이 다시 잎에 비추었다. 바깥은 푸르고 안은 은빛이며 밝고 환했다. 강희안은 운치와 절조가 없는 것은 굳이 완상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다. 당시엔 달리 조명기구가 없어 촛불이나 등불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촛불에 주목하게 된다.
학창시절 문학회 지도교수가 이가림(李嘉林, 1943~2015, 인하대 불문과 교수 역임) 시인이었다. 필독서로 가스통 바슐라르 저 『촛불의 미학(La flamme d'une chandelle, 1961)』을 권장해 주었다. "태양은 세상을 비추지만, 촛불은 영혼을 비춘다."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글이었다. 상상력을 생각하다 떠올리면서 이성적으로만 대하고 전혀 음미하거나 응용해보지 않은 것에 반성하게 된다.
"시인은 촛불의 불꽃을 통해 언어를 새롭게 점화한다." 촛불은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즉 촛불은 시의 불꽃인 것이다. 언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조선의 선비가 찾았던 운치가 게 있지 않은가?
바슐라르는 불, 물, 공기, 대지, 4원소의 물질적 상상력을 4부작으로 탐구한 바 있다. 여기에서 다루었던 '욕망의 불'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한 '사유의 불', 즉 영혼의 불을 다룬다. "촛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불이며, 영혼의 불이다." 작지만 집중으로 이끌고, 명료하게 가다듬어 준다. "촛불은 가장 겸손한 빛이지만, 그 안에는 가장 순수한 사유가 깃들어 있다."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명상의 등불'이다. 태양의 빛이 외부 세계 이성적 인식의 상징이라면 촛불은 내면세계의 감성적 통찰의 상징이다. 은은한 빛이 은밀한 고독의 친구가 된다. "촛불 앞에서 인간은 자신과 대화한다."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은 지속과 소멸의 은유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몸을 태우는 것이요, 사유한다는 것은 아름답게 불을 지피는 일이다. 소멸이 단순한 끝을 의미하진 않는다. 타오르고, 흔들리고, 사라지지만 빛을 낳아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시적 변주로 옮겨가는 것이다.
감각적 체험과 시적 상상의 만남 속에서 진정한 미학이 완성된다. 작은 빛이라도 인간의 영혼을 밝힌다면 그것이 진정한 미학 아니랴? 시적 상상력은 철학보다 더 깊은 진리를 드러낸다. 내면세계로의 여행, 사유로 창조의 불을 지피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 |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