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촛불이 비추는 꽃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촛불이 비추는 꽃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10-13 10:3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재 강희안(仁齋 姜希?, 1417~1464)은 시서화에 능한 삼절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학문에도 뛰어났다. 물리에 통달했지만 작품이나 저술은 많이 남기지 않았다. 청렴·소박한데다 영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쓴 『양화소록』에 "한 세상에 나서 오직 명성과 이익에 골몰하여 늙도록 헤매고 지치다가 쓸쓸히 죽어 가니 이것이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라 적었다. 도가사상에 심취해 자연과 동화된 진정한 자유와 평화, 평정심으로 살아간 도연명의 삶을 꿈꾸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실용서로 읽는 조선』의 '양화소록'편에 보면, 화훼를 키우는 법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꽃을 감상하고 즐기는 법이 소개되어있다. 강희안이 "초봄이 되어 꽃이 피면 등불을 밝히고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잎 그림자가 벽에 도장처럼 찍힌다. 아름다워 즐길 만하다"고 그림자 완상법을 적어 놓았다. 김안로는 "매화를 등불에 비춰 비스듬한 가지의 성긴 그림자가 또렷이 벽에 어리는 것을 함께 즐겼고, 그림에 뛰어난 아들 김희(金禧)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했다" 한다. 정약용은 국화로 그림자놀이를 한다. 빈방에 국화를 놓고, 벽 사이 적절한 곳에 촛불을 밝힌다. 국화의 꽃과 잎, 줄기가 거리에 따라 농담의 차이를 보이면서 한 편의 수묵화로 보이게 연출한다. 선비들은 매화음이란 술자리를 마련, 한겨울 매화가 피면 매화 넣어둔 감실에 구멍을 내고 운모로 막은 다음 이를 통해 그 안에 핀 매화를 보았다. 큰 백자 사발에 맑은 물을 담아 문밖에 내놓고 얼린 다음, 그 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촛불을 넣어 불 밝혀 품위를 높이기도 하였다. 환상적인 매화 감상이다. 유리잔에 촛불을 켜, 연꽃 사이에 띄워, 불빛이 유리잔에 비치게 하고, 술잔이 꽃을 비춰, 꽃빛과 물빛이 다시 잎에 비추었다. 바깥은 푸르고 안은 은빛이며 밝고 환했다. 강희안은 운치와 절조가 없는 것은 굳이 완상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다. 당시엔 달리 조명기구가 없어 촛불이나 등불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촛불에 주목하게 된다.

학창시절 문학회 지도교수가 이가림(李嘉林, 1943~2015, 인하대 불문과 교수 역임) 시인이었다. 필독서로 가스통 바슐라르 저 『촛불의 미학(La flamme d'une chandelle, 1961)』을 권장해 주었다. "태양은 세상을 비추지만, 촛불은 영혼을 비춘다."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글이었다. 상상력을 생각하다 떠올리면서 이성적으로만 대하고 전혀 음미하거나 응용해보지 않은 것에 반성하게 된다.

"시인은 촛불의 불꽃을 통해 언어를 새롭게 점화한다." 촛불은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즉 촛불은 시의 불꽃인 것이다. 언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조선의 선비가 찾았던 운치가 게 있지 않은가?

바슐라르는 불, 물, 공기, 대지, 4원소의 물질적 상상력을 4부작으로 탐구한 바 있다. 여기에서 다루었던 '욕망의 불'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한 '사유의 불', 즉 영혼의 불을 다룬다. "촛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불이며, 영혼의 불이다." 작지만 집중으로 이끌고, 명료하게 가다듬어 준다. "촛불은 가장 겸손한 빛이지만, 그 안에는 가장 순수한 사유가 깃들어 있다."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명상의 등불'이다. 태양의 빛이 외부 세계 이성적 인식의 상징이라면 촛불은 내면세계의 감성적 통찰의 상징이다. 은은한 빛이 은밀한 고독의 친구가 된다. "촛불 앞에서 인간은 자신과 대화한다."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은 지속과 소멸의 은유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몸을 태우는 것이요, 사유한다는 것은 아름답게 불을 지피는 일이다. 소멸이 단순한 끝을 의미하진 않는다. 타오르고, 흔들리고, 사라지지만 빛을 낳아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시적 변주로 옮겨가는 것이다.

감각적 체험과 시적 상상의 만남 속에서 진정한 미학이 완성된다. 작은 빛이라도 인간의 영혼을 밝힌다면 그것이 진정한 미학 아니랴? 시적 상상력은 철학보다 더 깊은 진리를 드러낸다. 내면세계로의 여행, 사유로 창조의 불을 지피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반도체 홀대' 충청, 李 정부 장관 인사서도 푸대접
  2. 민선 9기 대전시 첫 인사 단행
  3. 오석진 대전교육감 취임… "학교 중심 교육행정 실현"
  4. 대전 시내버스 사고 수 속여 성과금 더 받은 관계자들, 벌금형
  5. 민선 9기 대전 5개 구청장 취임…첫날 민생 지원·현장 중심 행보 눈길
  1. 대전시장 취임식장 단상에 난입한 로봇개! 너 누구니?
  2. 건양사이버대, 독일 심리운동협회와 맞손
  3. 김종일 대전세무서장 취임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무서 만들것"
  4. [인사] 충남대·충남대병원·을지대병원 등
  5.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헤드라인 뉴스


박수현 "충청권이 AI 반도체 중심"…392조원 규모 투자 환영

박수현 "충청권이 AI 반도체 중심"…392조원 규모 투자 환영

박수현 충남지사가 2일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공개된 충청권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바이오 분야 약 392조 원 투자 계획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를 두고 일각에서 불거진 충청권 소외론에 대해선 "투자 금액의 상대적 비교는 중요하지 않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도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SK하이닉스, 셀트리온 등은 이날 충청권 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 첨단 산업 핵심 분야에 392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중 도내 투자금은 202조 원이다...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발표가 임박하면서 최대 몇 개 구역이 선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둔산지구의 경우 최대 3개 구역까지 선정 가능하며, 송촌지구는 1개 구역만 신청해 사실상 선정이 확정된 상황이다. 현재 대전시는 국토교통부와 사전 협의를 마친 상태로, 2~3주 내 선도지구 선정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시에 따르면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공모에 둔산지구 9곳, 송촌(중리·법동)지구 1곳 등 총 10개 구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청구역은 특별정비예정구역 27곳 중 1구역(상록수·상아·초원·강변) 3899..

[MSI 2026] 대전 뜨겁게 달군 T1… 이제 우승 향해 달린다! 브래킷 스테이지 대진 확정
[MSI 2026] 대전 뜨겁게 달군 T1… 이제 우승 향해 달린다! 브래킷 스테이지 대진 확정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이스포츠 게임축제 202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2026)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대표로 출전한 T1이 승승장구하며 본선 라운드 브래킷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페이커' 이상혁의 소속팀인 T1은 1일 진행된 MSI 플레이-인 스테이지 최종전에서 강팀 '리퀴드(TL.북미)'를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완파하며 단 1팀에 주어지는 브래킷 스테이지 진출권을 따냈다. 이로써 T1은 세계 최정상급 8개 팀과 함께 우승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T1의 본선 과정은 그야말로 '압도적'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 ‘개문냉방 안돼요’ ‘개문냉방 안돼요’

  •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

  • 본격적인 장마철의 시작 본격적인 장마철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