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勿(말 물/하지말라) 捉(잡을 착) 盜(훔칠 도) 逐(쫓을 축/ 쫓아내다)
출 처 : 羅貫中(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비 유 : 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간다.
우리 속담(俗談)에 "쥐가 궁지(窮地)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다. 곧 죽음을 각오(覺悟)하면 못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전쟁(戰爭) 중에도 도망갈 곳을 열어두지 않고 싸운다면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결사항전(決死抗戰)하여 공격(攻擊)한 군사들도 상당한 피해(被害)를 입게 될 것이다. 곧 공격(攻擊)하더라도 적에게 '도망갈 수 있는 길(退路/퇴로)'을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옛말에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말이 있다. 경행록(景行錄)에도 "남과 원수를 맺게 되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라고 했고,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죽으면서 "적을 너무 악랄(惡辣)하게 죽여 내가 천벌(天罰)을 받는구나"라고 후회하며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충청도 어느 산골에 한 농부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동네 시골집들에는 대문이 있고 뒤쪽이나 옆 모퉁이에 샛문이 있는 집이 많았다. 농부의 집에도 뒤뜰 장독대 옆에 작은 샛문이 하나 있어서 이곳을 통해 대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작은 집에 갈 수 있어서 자주 드나들었다. 이 샛문은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마실을 갈 때, 사용하는 문이다.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속아준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이것은 마음의 여유(餘裕)이고 '아량(雅量)'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농부의 아들이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 넘실거리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하늘 높이 쌓아놓은 낟가리는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는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하셨던 어른께서는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 속에서 아들과 친구들은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며 나락을 마당에 쌓아놓고 가마니로 덮어놓았다. 다음 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보니 집에서 키우던 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 있었다.
원래 암놈 거위는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숫 놈 거위는 굵은 목소리로 "괙괙" 소리를 지른다. 목을 길게 빼고는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서 이 농부 집에는 얼씬도 못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렵은 식량이 귀하던 때라 도둑이 많아 개나 거위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 밤에 도둑이 든 것이다. 거위가 도둑놈의 바짓가랑이를 물자 낫으로 목을 후려쳐 죽이고 나락을 퍼담아 가지고 간 것이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웠다. 마침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 뒤를 따라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발자국은 고샅(마을의 좁은 길)을 지나 맨 꼭대기 오두막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내려오시는 것이었다.
평소 아버지는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덜미를 잡고 끌어내서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아니면 관아로 끌고 가서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형무소에 보냈음직 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오셨다.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독백처럼 하신 말씀이었다.
어린 소견이었지만 여름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 놓은 나락을 훔쳐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아버지다운 위엄이 설 것 같았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 는 말씀도 함께….
그날 이후 훔쳐간 ㅇ씨는 평생토록 원망과 원한 대신에 나락 한 가마니 빚을 지고 아버지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도맡아 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일은 꼭 생각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주지 못하고 몰아세우고 따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라.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무차별 공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항상 조금은 남겨 놓아야…."
"적정한 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주고, 여유를 가진 삶이 풍요를 누린다"는 진리를 우리는 대부분 지식으로 알고 있다. 또한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타인이 접근하기가 부담스럽고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자는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약간 엉성하고 빈틈이 있어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서로 동화되기도 한다.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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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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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