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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보수의 가치가 '지켜야 할 것'을 논하는 거라면, 진보의 가치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진보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지키는데, 진보는 정의의 이름으로 미래를 불러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진보는 불편한 존재입니다. 기득권 세력에게는 위협이 되고, 익숙함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진보'라는 말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졌습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은 있지만 정작 진보의 정신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과연 진정한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진보는 원래 정당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정치적 태도'였지요. 사회에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완화하려는 의지, 법과 제도가 약자를 배제할 때 약자 편을 들어주는 용기, 효율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신화를 만들어갈 때 그 방식이 옳으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보는 이미 만들어진 정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덜 불완전한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약속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진보 정당들은 깊은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과거 복지국가를 설계했던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힘 앞에서 시장과 타협했고, 그 결과 진보는 점점 중도로 이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혁과 연대라는 진보의 언어는 관리와 효율이라는 언어에 밀려났지요. 이 틈을 파고들어 등장한 것은 극우 포퓰리즘과 혐오 정치였습니다. 경제적 불안이 분노로 변할 때 진보는 그 분노를 포용하기보다 회피해왔습니다. 이제 세계의 진보는 '우리는 과연 누구의 편이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는 오랫동안 '보수 대 민주당'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광의의 진보 진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적 중도 정당', 또는 '온건 개혁보수''에 가깝습니다. 민주화의 유산을 계승했고, 복지와 평화를 확대한 공로는 분명하나, 재벌 중심 성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지 않았고, 노동·젠더·기후 같은 영역에서는 항상 정치적 부담 앞에서 한발 늦은 선택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한국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다는 사실이 진정한 진보임을 의미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정당이나 의회 밖에서 보면 노동 현장, 기후 운동, 청년 주거와 돌봄 문제, 젠더와 소수자 인권의 최전선에는 제도권 정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일관된 진보의 목소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진보는 정당보다 오히려 시민의 삶 속에 더 많이 남아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진보의 타락은 자신이 이미 옳은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그 순간입니다. 기득권을 비판하던 진보가 어느새 새로운 기득권이 되었을 때, 그때의 진보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 가장 엄격하고 준엄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여전히 약자의 편에 서 있는가?', '나는 많은 어려움과 제약 속에서도 여전히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그 변화의 비용을 언제나 타인에게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칠 때 진보의 진정한 가치는 유지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진보는 지금 편리함이 다음 세대의 절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그대로 두지 않는 것입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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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