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다문화] 지하철에서 만난 고향의 시, 뜻밖의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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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다문화] 지하철에서 만난 고향의 시, 뜻밖의 따뜻함

  • 승인 2026-02-01 10:59
  • 수정 2026-02-01 11:01
  • 신문게재 2026-01-03 10면
  • 충남다문화뉴스 기자충남다문화뉴스 기자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1(당리)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가장 이른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문에 기대 선 채, 무심코 스크린도어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다가 낯익은 중국 고시와 마주해서 뜻밖의 따뜻함이 마음속에 밀려왔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2(당리)
검색해 보니, 서울시는 2008년부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도록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를 설치해 왔으며, 2023년 12월부터는 한국 시와 함께 13개 나라, 13개 언어로 된 외국 시 24편이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3(당리)
이 가운데에는 중국 시 세 편인데 각각 명동역의 두목의 「산행(山行)」, 홍익대입구역의 신기질의 「추노아·서박산도중벽(丑奴儿·书博山道中壁)」, 그리고 대림역의 이백의 「산중문답(山中问答)」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4(당리)
이러한 시들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바쁜 일상 속에서 우연히 한 편의 시를 만나 잠시 고요와 아름다움에 머물 수 있도록 문 앞에 조용히 서 있다. 알고 보니 문화의 포용과 나눔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수업 시간에 지하철 역에서 봤던 「산행(山行)」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5(당리)
遠上寒山石徑斜,먼 산으로 가는 돌길은 비스듬히 이어지고

白雲深處有人家。흰 구름 깊은 곳에 사람들의 집이 있다

停車坐愛楓林晚,마차를 멈추고 단풍 숲 속 저녁을 즐기니

霜葉紅於二月花。서리 맞은 단풍잎은 이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6(당리)
그런데 뜻밖에도 한 학생이 과제 밑에 아름다운 단풍 사진 한 장과 함께, 이런 글을 적어 놓았다. "선생님께서 좋은 시를 알려주셔서, 저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의 가을 시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다시 한 번 뜻밖의 따뜻함이 번져왔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7(당리)
시는 더 이상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분주한 도시의 리듬 속에서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여백을 남기고, 때로는 그렇게 조용히 한 교실의 문을 두드린다.

서울에서 계룡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앉아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을 바라보니, 예전에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장면이 떠올랐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8(당리)
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을 따라 깡충깡충 뛰며, 함께 길을 밝혀주던 가로등 하나.

지하철역의 이 시들, 학생한테 추천받은 시는 아마도 그런 가로등이 아닐까. 요란하지 않은 빛으로 우리의 일상을 따라오며, 때로는 붉게 물든 단풍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조용히 비춰준다.
당리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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