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삭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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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삭발 정치

윤희진 서울본부 부국장

  • 승인 2026-03-25 00:06
  • 수정 2026-03-25 00:16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윤희진 부국장(중도일보)
윤희진 부국장
이유가 있다. 직업적 특성에 따른 것도 있다. 분위기나 스타일을 바꾸거나 의학 또는 위생적인 이유로 하기도 한다. 물론 덥거나 관리하기 귀찮아서 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뭔가 목적이 있다. 삭발(削髮·Tonsure) 얘기다. 머리 피부가 다 드러나게 머리카락을 '박박' 깎는 삭발은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삭발한 사람은 시선을 끈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아 이슈가 되기도 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 정치권에 또다시 ‘삭발 정치’가 확산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이 국회를 찾아 삭발했다.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국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은 정책전문가로, 강성이 아닌 중도·보수로 분류되는 박 시장의 삭발은 의외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본인도 페이스북에 "평소 논리와 합리로 정치를 풀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어 삭발하고 단식하는 자해적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이번엔 생각을 달리 먹었다"고 쓸 정도였다.



비슷한 이유로 삭발한 이는 같은 당 김진태 강원도지사다. 올해 2월 많은 강원도민과 함께 국회를 방문해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머리를 깎았다. 당시 대전·충남,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 논의가 한창일 때인데, 먼저 발의돼있는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부터 처리해달라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첫 삭발 주자를 자처했다.

박형준 시장과 김진태 지사는 현직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경쟁자에게 밀리거나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역 광역단체장임에도 삭발을 강행했다는 건 그만큼 6·3 지방선거 전망이 어둡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이유로 삭발 대열에 합류한 이도 있다. 같은 당인 김영환 충북도지사다. 그는 6·3 지방선거 공천심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현역 광역단체장이 컷오프된 건 김 지사 역시 삭발로 항의한 후 법원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당의 방침이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과거로 돌아가면, 2009년 10월 야당인 민주당 양승조·박수현·박정현 등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원안 추진을 요구하며 머리를 깎았다. 같은 이유로 2010년 1월 자유선진당 류근찬·이상민·김낙성·임영호·김창수 등 지도부가 삭발했고, 결국 세종시 수정안 국회를 이끌어 냈다. 모두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둔 2019년 5월에는 야당인 자유한국당 김태흠·이장우 의원 등이 여당인 민주당과 범민주 계열 정당의 선거제·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삭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유권자의 평가는 엇갈렸다.

앞서 열거한 삭발한 이들은 모두 야당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독특하게 여당 인사가 삭발한 사례도 올해 2월에 있었다. 대전·충남 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국회의원으로,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행정통합을 촉구하며 머리를 깎았다. 대전·충남 최다선인 4선 의원으로 삭발보다 결정권을 쥔 당 지도부를 설득해 해법을 주도했어야 한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아쉽게도 행정통합과 통합특별시장을 모두 놓치며 당내 입지와 영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인의 삭발을 진정성이 없거나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한 건 삭발 저항은 요구사항을 관철하고 지지세와 여론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 각종 선거가 다가올수록 삭발 투혼을 발휘하는 정치인이 유독 많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내 경선에서 질 가능성이 크거나 본선에서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할수록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명분을 만들고 삭발을 감행하는 게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삭발의 목적을 달성하는 건 쉽지 않다. 선거에선 더욱 그렇다. 특히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평가와 12·3 비상계엄 후 첫 지방정부 평가 성격이 강한 6·3 지방선거에서 현역 광역단체장들까지 줄줄이 삭발에 나선 국민의힘이 위기를 타개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윤희진 서울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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