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를 기억하는 영화 '내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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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를 기억하는 영화 '내 이름은'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04-16 16:48
  • 신문게재 2026-04-17 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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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이름은' 포스터.
기억을 잃고 평생을 산 여자가 있습니다. 기억의 상실은 폭력의 세월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입니다.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그녀의 삶은 온전한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기억 찾기는 제 이름 다시 찾기와도 같습니다. 또한 그녀의 춤과 아들의 그림은 예술로 표현되는 기억하기입니다.

공식 역사는 권력과 긴밀합니다. 그러니 그 반대편은 망각의 그늘 속에 은폐되기 일쑤입니다. 영화는 그 오랜 세월 국가가 저지른 일을 공적 역사가 제대로 기억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저항으로서의 기억입니다. 예술은 이렇게 공적 기억의 어두운 이면을 더듬어 빛 가운데 드러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는 피맺힌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아직 채 국가의 기틀을 갖추지도 못한 상황에 냉전의 국제 질서를 맞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한스런 자취입니다. 이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외면하고 방치한 문제가 더 큽니다. 영화는 이에 대해 아들의 삶을 통해 폭력의 역사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후대에 대물림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어린 영옥과 정순이 바다 속에서 나누는 우정이 생각납니다. 극히 평화롭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납니다. 하여 그들의 평화를 깨어버린 폭력의 무자비와 몰이해는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맑은 바다와 푸른 보리밭의 어여쁜 공간이 피맺힌 트라우마의 세월을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극한의 모순입니다.

염혜란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를 통해 한스런 제주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에 이어집니다. 그러나 영화는 역사적 상황들을 인물의 삶에 작위적으로 연결한 점이 아쉽습니다. 4·3 사건의 수난을 겪은 이가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고 그 딸이 광주 민주화 항쟁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영화는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합니다. 역사적 비극을 개연성만으로 한 작품에 담아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처럼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연결지었더라면 한층 깊고 아픈 주제 의식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 세대를 격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로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영화로 이렇게 4·3 사건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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