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절수변기, 우리는 왜 아직도 9리터를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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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절수변기, 우리는 왜 아직도 9리터를 쓰고 있는가?

최병조 세종교육회의 공동대표

  • 승인 2026-05-25 12:57
  • 신문게재 2026-05-26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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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조 세종교육회의 공동대표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는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물 절약과 에너지 절약, 탄소 중립은 정부 정책과 시민교육, 기업 홍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언어가 됐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양치컵 사용을 가르치고, 가정에서는 변기 수조 안에 벽돌을 넣거나 '똑딱이'라 불리는 절수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수도요금을 줄이기 위한 생활습관이 아니다. 수돗물 한 방울이 가정에 도달하기까지는 취수와 정수, 송수와 배수, 하수처리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마다 막대한 에너지가 사용된다. 결국 물 절약은 곧 에너지 절약이며, 탄소 배출 감소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일상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이러한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환경부는 2012년 수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절수설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당시 환경부는 기존 13리터 양변기를 6리터 절수형 양변기로 교체하면 연간 3134만 톤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양변기의 1회 사용 수량 기준은 기존 15리터 이하에서 6리터 이하로 강화됐다. 이후 2022년에는 절수등급 제도까지 정비됐다. 제도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절수 정책 체계를 갖춘 나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수도법이 개정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는 양변기의 물 사용량은 여전히 약 9리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도시가 조성되고 새로운 공공건물이 들어서고 있음에도 법 기준인 6리터 절수형 변기는 사실상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문제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커다란 간극에 있다. 현재 절수형 변기의 상당수는 실험실 인증 기준은 충족하지만,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기준 이상의 물을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올림 기준' 문제다. 현행 KS 수치 맺음 법에 따르면 실제 측정값이 6.4리터인 제품도 인증 상 6리터 제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소비자는 당연히 이를 '6리터 절수형 변기'라고 믿지만, 실제 사용량은 훨씬 많을 수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험환경 자체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인증시험은 일정한 수압과 표준화된 조건에서 진행되지만, 실제 건물에서는 수압, 배관 길이, 하수관 경사, 유지관리 상태에 따라 사용량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현재 대부분 사용되는 통트랩·사이펀 방식 변기는 구조적으로 강한 세척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량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결국 시험실에서는 6리터가 가능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9리터 이상을 사용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 집행 의지의 부재다. 수도법 제15조를 위반하면 최대 9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이는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상 과태료에 불과하다. 건설사가 법 기준에 맞지 않는 절수설비를 설치하더라도 정부 입찰 제한과 같은 실질적인 제재는 거의 없다. 정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단속하거나 강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우리는 늘 환경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양치 컵 사용과 생활 속 절수를 강조하면서 정작 하루 수십 리터의 물을 사용하는 공공건물과 공동주택의 절수 기준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현실은 분명한 모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나 캠페인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제도를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이제 실사용 환경을 반영한 인증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시험 성적만 통과하는 제품이 아니라 실제 건물에서 얼마나 물을 절약하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또한, 수도법 위반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강화하고 공공부문부터 절수설비 기준을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시작은 결국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 변기 하나에 있다. /최병조 세종교육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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