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동양철학의 권위자인 이기동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유학대학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역경』 등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인물이다. 사서삼경의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이는 작업은 머리카락이 새까맣던 1987년에 시작되어, 백발이 성성해진 200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무려 2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노자와 장자, 주역 등을 깊이 연구하며 30년 넘게 동양 고전에 천착해왔다. 특히 그의 저서 『유학 오천년』은 유학의 발원에서부터 동아시아 각국으로의 전개 과정까지를 통시적으로 조망한 5권 분량의 대작으로, 평생에 걸친 연구와 사유가 집약된 필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오랫동안 『환단고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계기로 직접 『환단고기』를 읽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 안에 담긴 깊은 철학과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환단고기』가 결코 위서가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나아가 그는 오늘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환단고기』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읽은 뒤 이기동 교수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글의 의미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세상에는 편견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유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를 유교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남아있는 잘못된 폐단이 유교의 잔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유교의 중심 경전인 「논어』를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논어』 한 줄 읽어보지 않고 유교를 비판만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는 잘못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잘못된 사람을 보고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아니라고 대답을 합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한 줄 읽어보지 않은 채 기독교를 비판만 합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쉽게 판단해 버립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도 『환단고기』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환단고기』는 이미 유력한 강단사학자들에 의해서 위서僞害로 판정된 서적입니다. 저도 그들의 판단만 믿고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제자들과 어울려 독서모임을 지속해왔고 많은 서적들을 읽었습니다. 한문해독을 위해 『통감절요』를 읽었고 배요한 목사님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 퇴계선생과 고봉선생 사이에서 오고 간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인 사단칠정분이기왕복서四端七靑分理氣往愎書」를 읽었고, 혜능대사의 『육조단경」을 읽었습니다. 몇년 전 『육조단경』이 끝나갈 무렵에 당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중이던 정창건 군이 『환단고기』를 읽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저는 처음에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펑소에 학생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한 번 읽어보자고 수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환단고기』를 읽어나가다가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환단고기』에 기록된 우리의 역사가 지금껏 알던 것과 달랐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광대한 영토를 호령했다고 하면 자랑스러움을 느끼거나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환단고기』에 담긴 우리 고유의 철학과 사상이었습니다. 고조선 시대의 심오하고 뛰어난 철학과 사상을 접하고는 전율을 느낄 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대단한 철학과 사상을 지금까지 읽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죄를 지은 듯 참담한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고유한 사상이 없다는 말을 저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유학은 중국 것이고 불교는 인도 것이므로,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는 무속 정도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철학과 사상을 모르기 때문에 내리는 판단들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고대 사상은 유학 · 노장사상 · 불교 등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최치원 선생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는데 유학사상 · 노장사상 · 불교사상을 포함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읽은 저는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말씀이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된 까닭은 감정하는 과정에 철학자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하여 비유해 보겠습니다.
어느날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두고 전문가들이 모여 진위를 판정한 결과 진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종이 전문가가 추사 당시의 종이가 아닌 후대의 종이가 사용되었음을 밝혀냈고 먹 전문가가 추사 당시의 먹이 아닌 후대의 먹이 사용되었음을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서예 전문가는 감정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서예 전문가가 참여했다면 진본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서예가가 보면 당시의 종이가 아닌 것은 부분적으로 좀이 먹어 없어진 부분을 후대에 채운 것이고, 당시의 먹이 아닌 것은 획이 지워져 후대의 먹으로 다시 그은 것임을 바로 압니다. 『환단고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조선왕조 초기에 인심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정상에서 벗어난 책을 모두 수거하여 소각하라는 어명이 여러 차례 내려졌습니다. 민심을 어지럽히는 참서나 음양술서 등을 없앤다는 명분이었지만 실록에 언급된 책 제목만 봐도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표훈삼성밀기』 등 우리 고대의 기록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도 특히 태종 때의 분서를 가리켜 고대의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고대에 관한 기록은 역사에서 거의 지워졌고 일부 뜻있는 분들이 남긴 필사본으로만 남몰래 전해졌습니다.
필사본은 지켜오다가 보면 얼마 가지 않아서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이고 지워져 없어진 것들도 많이 생깁니다. 필사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을 보충한 것도 있고 당시의 말로 바꾼 것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켜져 오다가 조선 말기에 정리된 것이 『환단고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단고기』에는 당시에는 없던 최근의 말들이 일부 들어있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내어 위서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잘못은 판정단에게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잘못은 판정에 참여하지 않은 철학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시 저는 일부 역사학자들을 탓하기보다 저 자신을 꾸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고 미안하여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환단고기』를 읽고 해설서를 출판하게 된 것이 약간이나마 속죄가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달래보기도 합니다.
『환단고기』를 읽어보면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잘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술술 풀리고 중국의 성리학이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성리학이 중국의 성리학과 왜 다른지, 퇴계 선생의 성리학과 율곡 선생의 성리학이 왜 다른지 등의 의문이 모두 풀립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단고기』를 통해서 한국인에게 고유하게 내려오고 있는 공통된 정서가 무엇인지 한국인에게 흔히 보이는 단점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인의 잠재력에 불을 붙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등에 관한 내용을 환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사랑들이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시람들을 '환빠'라고 칭하며 거친 언사로 비난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비난을 잘못된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까닭은 『환단고기』를 곡해해 우리 민족이라는 관점으로만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환국과 고조선은 아시아 여러 국기와 민족의 기원일터인데 그것을 대한민국이나 한민족만의 조상으로 여기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 여기에는 어떤 민족이 차지한 영토가 그 민족의 위대함을 나타낸다고 여기는 잘못된 태도도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쪽 역시 지나친 점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와 『환단고기』 연구자를 동일시하고 일부 『환단고기』 연구자의 잘못된 생각을 나열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또 『환단고기』의 일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가지고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라고 판단내리기도 합니다. 『환단고기』를 철학서나 사상서가 아닌 역사서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비판은 바람직하고 또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편잔자인 계연수와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집중되고 그나마 『환단고기』의 내용에 대한 논의도 역사적인 부분에만 머무는 것은 문제입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환단고기』에 담긴 철학과 사상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환단고기』에서 배워야 할 것은 환국과 고조선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고 흔들리는 우리 삶에 어떤 지침을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거의가 서구 근세에 발달한 합리주의 사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구의 물질문화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삶이 피폐해져 많은 사람들이 불행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구를 파괴시켜 지구가 살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전에 이해극이라는 농민의 강의를 듣던 중에 따갑게 다가온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동물이 마로 인간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그 분은 인간 이외에 지구를 이렇게 망가뜨린 동물이 어디에 있느냐고 절규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구를 떠나야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제 다급해졌습니다. 사람이 더 이상 불행의 늪에 빠지기 전에 구해야 합니다. 지구가 더 이상 파괴되기 전에 빨리 파괴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이 『환단고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인간성이 파괴된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 규정합니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짐승은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을 폄하해서 하는 말입니다. 인간성이 파괴된 사람이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단고기』에서는 짐승이 사람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지구가 파괴되는 근본 원인은 인간이 짐승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이 다급한 문제의 해결책은 짐승이 사람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짐승이 인간 되는 과정을 오늘날에 복원하기만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지구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위대한 한국인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반드시 『환단고기』를 읽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환단고기』를 참고해서 우리들이 먼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우리나라를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야 하고 세상을 홍익인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유전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출처 : 이기동·정창건, 『환단고기』, 도서출판 행촌, 2019)
이 글은 『환단고기』의 진위를 두고 누군가의 편을 들기 위해 쓰인 글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유학과 동양철학을 연구해온 한 학자가 자신의 인식과 공부를 다시 돌아보며 남긴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젊은 연구자의 선언문도 아니고, 자극적인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오래 공부해온 사람이 어느 지점에서 생각이 흔들리고, 무엇을 새롭게 보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동 교수는 『환단고기』를 단순한 상고사 사료처럼 읽지 않았다. 그 안에서 인간과 문명, 동양 정신문화의 원형 같은 문제를 읽어내려 했다.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지, 왜 뿌리에 대한 질문이 반복해서 등장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읽어보지도 않은 채 미리 결론부터 정해놓고 접근하는 태도 역시 건강한 학문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평생 철학과 유학을 연구해온 원로 학자가 왜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결국 과거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어버릴 때 방향도 함께 잃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책은 단순한 사료 논쟁을 넘어, 지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글이 남기는 여운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읽지 않은 사람이 가장 쉽게 단정하고, 끝까지 읽은 사람은 쉽게 말을 아끼게 된다. 『환단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평가를 반복하기보다 직접 읽고 고민해보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지금 서점에 가보라.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손에 들려 읽히고 있는 환단고기 역주본이 왜 끊임없이 다시 이야기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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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동 교수 "저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환단고기에 담긴 우리 고유의 철학과 사상이었습니다" <챗GPT생성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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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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