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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안 사회과학부 차장 |
이 모임에서 만난 이혜민 작가는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지냈다는 몇 가지 공통된 경험때문에 일제 전쟁유적을 견학하는 자리에서 두 차례 만나 대화를 쉽게 나눴습니다. 부모님이 돼지농장을 하였노라고 먼저 이야기 꺼내고 건강때문에 신문사를 퇴사해 지금은 작가로 글을 쓰면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견학 모임을 마치고 최근 그가 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혜민 작가의 책은 6·25전쟁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생포되었다가 우리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탈북의 방식으로 남한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들을 이 작가가 만나 기록한 책입니다. 저도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 산전수전 겪어봤다고 생각하는데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군포로'가 있다는 것조차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읽는 동안 내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에 취해 이분들이 일생에 짊어진 전쟁의 굴레를 잊고 있었구나 미안하고 반대로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죠. 이혜민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그해 국군포로 8300여 명이 남한에 돌아왔으나, 그러고도 북에 남겨진 국군포로는 5만~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요. 북한에서 40년 이상 살다가 개인적으로 탈출해 남한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이고, 세월이 흘러 이제 90세에 가까운 국군포로 세대가 더는 탈출의 형식으로 남한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계시지 않다고요.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현재 국내에 귀환한 생존자 11명을 만나 그중 9명 생애를 책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은, 국군포로는 북한 내무성 건설대, 교화소, 인민군에서 탄광·목공·공장·농업 노동자로 자기의 의지와 관계 없이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국군포로들은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내무성 건설대와 인민군 등에 편입하거나 교화소에 구금했고, 국군포로를 아버지로 친인척으로 둔 사람들은 연좌제때문에 군 입대는 물론 노동당 가입이 어려워서 북한에서도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어 자식에게도 미움과 외면받은 존재가 되었다고 하고요.
이혜민 작가는 지난 4월 서울에서 만났을 때 기자에게 대전에 생존한 귀환 국군포로가 한 분 계시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소개해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이 작가의 두 번째 책 '이 말만은 남기고 싶었다오'가 최근에 발간되었는데 그 안에 대전에 사시는 교환 국군포로 서상준 옹의 말씀이 담겨 있어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청주에서 나고 자라 대전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퇴직한 그는 17세에 입대해 강원도 횡성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휴전 때 교환 포로로 국내에 돌아왔는데, "후손들은 그런 세상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임병안 사회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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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