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시거든 떫지나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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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시거든 떫지나 말지

원구환 한남대 학사부총장

  • 승인 2026-10-06 18:03
  • 신문게재 2026-10-07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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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한남대 학사부총장
가을이 깊어지면 감나무에 주홍빛 감이 하나둘 매달린다. 여름 내내 푸르기만 하던 감이 어느새 색을 바꾸고, 가지 끝마다 묵직한 열매가 달린다. 보기만 해도 잘 익은 것 같아 따서 한입 베어 물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겉은 그럴듯하게 익었는데 속은 아직 설익어 입안이 얼얼하고, 혀가 마비될 만큼 떫다. "시거든 떫지나 말지"라는 말은 바로 그럴 때 쓰인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이 말이 감나무의 감에만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책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 기제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된 정책일지라도 설계와 집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오류를 범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책 오류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채택하지 말아야 할 대안을 선택하는 제1종 오류, 효과적인 대안을 기각하는 제2종 오류, 그리고 문제의 정의 자체가 잘못된 제3종 오류가 그것이다.

먼저 제1종 오류는 효과가 없거나 해로운 정책을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여 채택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일부 지자체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건설했던 '경전철' 사업을 들 수 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장밋빛 수요 예측을 근거로 사업의 타당성을 주장했으나, 개통 이후 실제 이용률은 예측치의 한참 미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정책 결정자가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낙관적 편향에 빠져 위험 신호를 무시한 결과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재정 낭비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반대로 제2종 오류는 실제로 효과가 있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를 채택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 '신재생 에너지 정책'이 초기 단계에서 겪었던 부침이 이에 해당한다.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과 기술적 타당성이 입증되었음에도 기존 에너지 산업계의 반발과 초기 비용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과감한 투자가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서 한 발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제3종 오류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여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는 '근본적 진단 오류'를 의미한다. 과거 우리 사회를 뒤흔든 '부동산 가격 폭등' 대응 정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집값 상승의 원인을 투기 세력의 발호로만 규정하고 수요 억제와 규제 강화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공급 부족과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과잉, 그리고 주거 환경에 대한 국민의 욕구 변화에 있었다. 문제의 정의가 틀리니 수십 차례의 대책도 백약이 무효했다.

정책 오류는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직관적 결정,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현장과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특히 제3종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 단계부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빨리 결정하고, 빨리 발표하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문제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서둘러 내놓은 결과가 결국 시민에게 불편과 혼란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미숙함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설익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부족한 점을 감추고 완성된 것처럼 포장할 때 문제가 커진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때 신뢰가 회복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 역시 처음부터 홍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햇볕과 바람을 견디고, 나무에 매달린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단맛을 얻는다. 깊어 가는 가을에는 시지도 떫지도 않은 감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구환 한남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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